사우디 국왕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는 오늘 발표한 칙령 (A/303)을 통해 1412년 8월 27일 (서력 1992년 3월 1일)에 공표한 칙령 (A/90)에 따라 발행한 기본 통치법과 1393년 2월 10일 (서력 1973년 3월 15일)에 발행한 칙령 (M/3)에 따라 발행한 국기법을 검토한 후 올해부터 매년 3월 11일을 "플래그 데이"로 지정하여 이를 기념한다고 공표했습니다.
사우디는 이번 칙령에 따라 공휴일은 아니지만, 매년 3월 11일에 플래그 데이를 기념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공휴일은 아니어도 국기 게양식 등의 기념행사를 갖는다는 점에선 UAE 플래그 데이 (11월 3일)와 유사하지만, 이를 지정한 근본적인 배경은 다릅니다. UAE의 플래그 데이는 이름만 플래그 데이일 뿐 사실 셰이크 칼리파 전 대통령의 취임 기념일 (2004년 11월 3일)에 맞춰 지정되었지만, 사우디의 플래그 데이는 현재의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알사우드 (이하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현재 사우디 국기의 원형을 확정한 1355년 12월 27일 (서력 1937년 3월 11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아랍어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사우드 왕국이라는 의미)은 다른 이웃 걸프국가들과 달리 1727년 무함마드 빈 사우드 알무끄린이 디리야를 도읍지로 삼아 디리야 토후국을 건국한 후 지금까지 3세기 가까이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사우드 씨족이 세웠던 세번째 국가입니다. 사우디의 이번 국기일 제정은 사우디 정부가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인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해 온 일련의 노력들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제1사우디 국가라고도 불리는 디리야 토후국의 도읍지였던 디리야 내 알투라이프 지구를 마다인 살레에 이어 두번째로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를 시키면서 전세계에 디리야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비전 2030의 일환으로 디리야 게이트 (Diriyah Gate)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발을 진행하다 올해 초 아예 국부펀드 PIF의 5대 기가 프로젝트 중 하나로 격상시킨 것이나, 작년부터 2월 22일을 기존의 내셔널 데이에 이어 파운딩 데이로 지정하면서 디리야 토후국의 시작점을 무함마드 빈 사우드 알무끄린과 와하비즘의 시조이기도 한 이슬람 원리주의 학자인 무함마드 빈 압둘 와합이 의기투합한 1744년이 아닌, 1727년 2월 22일로 명시한 것들이 모두...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왕국은 20세기에 갑툭튀한 나라가 아닌, 사실은 사우드 씨족이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3세기 동안 흥망성괴를 거듭하며 투쟁하여 일궈온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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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덧붙여 플래그 데이를 기념일로 새로 지정함에 따라 사우디 플래그 데이는 히즈라력이 기준인 사우디에서 내셔널 데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국일- 9월 23일), 파운딩 데이 (디리야 토후국 건국일- 2월 22일)에 이어 서력으로 지정한 세번째 국가 기념일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3세기 동안 사우디 국기는 어떻게 변해왔었을까요?
제1사우디 국가 (1727~1818)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디리야 토후국 (Emirate of Diriyah) |
1727~1818 |
녹색을 중심으로 오른쪽 끝에 흰색의 세로줄을 둔 투톤을 배경삼아 녹색 바탕 위에 흰색 글씨로 샤하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입니다.)만 적혀 있었습니다.
제2사우디 국가 (1824~1891)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네즈드 토후국 (Emirate of Nejd) |
1824~1891 |
디리야 토후국의 국기와 같은 디자인이지만 샤하다의 글씨체만 달랐습니다.
제3사우디 국가 (1902~현재)
몰락해서 쿠웨이트로 추방당했다가 다시 돌아와 리야드 토후국을 세우며 시작된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전쟁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국을 선포할 때까지 30년간 계속되었으며, 어떤 지역을 복속시켜 나갔느냐에 따라 국명과 국기를 바꿔갔습니다.
1)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 전쟁 (1902~1932)
(1) 리야드 토후국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리야드 토후국 (Emirate of Riyadh) |
1902~1913 |
변방으로 내쫓겼던 사우드 씨족이 리야드로 돌아왔음을 선포하듯 디리야 토후국의 국기를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2) 네즈드-하사 토후국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네즈드-하사 토후국 (Emirate of Nejd and Hasa) |
1913~1921 |
리야드를 발판으로 삼아 중부의 알하사 일대를 통합하며 아라비아 반도의 중부 지방으로 영토를 확장합니다. 녹색과 흰색 바탕에 샤하다만 있던 국기에 처음으로 칼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쌍칼!
(3) 네즈드 술탄국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네즈드 술탄국 (Sultanate of Nejd) |
1921~1926 |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자신의 직함을 지금까지 써온 에미르가 아닌 술탄으로 칭하면서 이름이 토후국에서 술탄국으로 바뀌었으며, 샤하다 위의 쌍칼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칼 하나로 바뀌었습니다. 1925년 12월에 메카를 포함한 아라비안 반도의 서해안 일대를 영토로 삼았던 헤자즈 왕국이 건국 9년만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디리야 토후국이 멸망한 이후 117년간 지배권을 잃었던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되찾게 됩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기도 한) 세계 1차 대전 이후 건국을 선언했다가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에게 헤자즈 일대를 내준 하쉬미야 씨족은 북서부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요르단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요르단이 사우디와 함께 씨족명을 국가 공식명칭에 사용하는 이유죠.
(4) 헤자즈-네즈드 왕국
국명 | 역사 | 영토 | 국기 |
헤자즈-네즈드 왕국 (Kingdom of Hejaz and Nejd) |
1926~1932 |
헤자즈 왕국을 병합하는데 성공한 네즈드 술탄국의 술탄 압둘아지즈 알사우드는 1926년 1월 8일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에서 헤자즈 국왕에 취임하고 이듬해인 1927년 1월 29일 네즈드 술탄국을 네즈드 왕국으로 격상시킵니다. 그리고 넉달 뒤 대영제국에 헤자즈-네즈드 국왕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헤자즈-네즈드 왕국의 국기는 사우디 국기 역사상 가장 복잡한데, 네즈드 술탄국 국기에서 샤하다 상단에 있던 칼이 하단으로 내려오면서 그 밑에 이 때만 사용된 또다른 문구 (نصر من الله وفتح قريب)가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쿠란 제61장 사프 13절의 일부인 "하나님의 원조와 신속한 승리"를 따온 것으로 막바지에 다다른 자신의 아라비아 반도 통일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반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헤자즈-네즈드 왕국을 선포하고 6년 동안 자신의 아들 파이살 (훗날 사우디 3대 국왕)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맡긴 헤자즈 왕국과 사우드 (훗날 사우디 2대 국왕)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맡긴 네즈드 왕국으로 나누어 통치해 왔던 압둘아지즈 국왕은 1932년 9월 23일, 주요 영토인 알하사 (중부), 까티프 (북부), 네즈드 (남부), 헤자즈 (서부)를 통합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2)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1932~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국기는 지금까지 샤하다가 녹색 바탕 위에 오른쪽 정렬로 적혀있던 것과 달리 칼과 함께 녹색 바탕의 중앙으로 위치를 이동하게 되었으며, 건국이래 현재의 국기가 확정될 때까지 총 세번 바뀌었습니다.
1932.9.23~1934 | 1934~1937.3.10 | 1937.3.11~1973.3.14 | 1973.3.15~현재 |
1934년의 첫번째 변경은 국기 오른쪽에 있던 흰색 세로줄이 얇아졌고, 이번에 플래그 데이로 지정된 두번째 변경은 디리야 토후국 건국 이래 2세기가 넘게 국기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던 흰색 세로줄을 다 없애버리고 완전한 녹색 바탕을 만든 것이었으며, 1973년 3월에 세번째로 수정하면서 칼의 모양을 단순화하고 녹색 바탕 위에 자리잡은 샤하다와 칼의 크기를 줄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국기의 배경이 되는 초록색 (팬톤 코드 330C, 349, 355)은 이슬람을 상징하고, 칼 끝이 왼쪽을 향하고 있는 수평 검은 정의를 적용하는 엄격함을 상징하며, 검 위의 샤하다는 쑬루쑤체로 있습니다. 이슬람 서예체 중 하나인 쑬루쑤 (Thuluth)는 글자의 모양이 각지지 않고 곡선 및 사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음부호를 장식처럼 아름답게 활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중세 시대 모스크 장식에 사용된 우아하고 아름다운 필기체입니다. 서체의 이름이기도 한 쑬루쑤는 아랍어로 1/3이라는 뜻으로 각 문자의 1/3이 기울어진, 혹은 문자의 가장 좁은 부분의 너비가 가장 넓은 부분의 1/3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곡선과 사선을 강조한 서체는 약간의 형태 변경을 통해 다양한 서체 스타일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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