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거주자들의 경제활동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GCC 국가들은 최근들어 외국인 거주자들을 내보내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 붙잡으려는 이중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예전처럼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카팔라 시스템 ([경제] 한 눈에 살펴보자! GCC국가들의 사회,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공통의 스폰서쉽 제도, "카팔라" 참조)을 앞세운 고용 정책으로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는데다, 언제까지나 정부가 국민들에게 퍼줄 수는 없는 마당이기에 자국민들의 고용을 최우선시하여 공공분야에서부터 자국민 우선 고용정책을 본격화하여 외국인 거주자들을 자국민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자국민들의 실업률이 높은 사우디와 오만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우디는 니따까로 불리는 자국민 고용 쿼터제가 한계에 부딪치자 특정 분야를 단계적으로 선정하여 외국인 거주자를 퇴출시키고 전부 사우디인화 하는 방식으로, 오만은 아예 신규 외국인 취업비자를 일정기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강제 자국민화를 진행하고 있죠. 그 댓가는 적절한 자국민 고용인력을 찾지 못한 사업체 수 감소와 외국인들의 출국 러시로 인해 높아진 공실률을 해결하지 못하는 부동산 업계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요.
UAE 장기 비자 vs 카타르 영주권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공공부문 종사자에게 3년 비자, 민간부문 종사자에게 2년 비자를 발급해오고 있는 UAE는 지난 5월 해외 투자자와 전문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10년짜리 장기 비자 도입을 승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직까지 새로운 비자정책 도입과 관련한 구체적인 시행령이 공표되지는 않은 상황이기에 어떤 직종까지가 적용대상이고, 무엇보다 상황에 따라 자유로운 이직이 가능한가의 여부에 대해 불확실하긴 합니다만, 한 번 비자를 발급받으면 장기 체류를 확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9월 초 계속되는 고립정책의 여파로 고심하고 있는 카타르는 셰이크 타밈이 직접 발표한 Law No. 10 of 2018에 의거하여 UAE보다 진일보한 GCC 최초의 영주권 도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연간 100명 정도에게 부여할 것이라고 알려진 카타르 영주권 취득조건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첫째, 신청일 기준으로 20년 (카타르 출생자의 경우 10년) 동안 카타르에서 합법적인 거주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거주기간 중 연간 60일 이상 해외 체류시엔 이를 거주기간에서 차감하고,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영주권 신청 후 6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할 경우 거주기간 차감하여 기간에 따라서 자격미달로 신청자격을 박탈할 수 있음.)
둘째, (아직 기준점이 되는 최저금액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신청자 본인과 가족들을 부양할 충분한 수입을 갖고 있어야 하며, (카타르에서 20년 이상 체류했다손 치더라도 저임금 노동자들은 여기에서 걸러지겠죠. 어차피 카타르는 1인당 GDP가 세계 상위권에 드는 나라이기도 하구요.)
셋째, 당연한 얘기지만 범죄 이력이 없어야 하고....
여기까지 어떻게 대상이 되더라도....
넷째, (평가기준은 뭔지 알 수 없지만..) 아랍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카타르의 영주권 도입 발표 이후 약 10일 뒤인 9월 중순, UAE는 앞서 발표한 10년 짜리 전문 비자에 이어 5년 짜리 노후 비자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노후 비자는 UAE에 체류를 희망하나 취업 비자를 받기 힘든 55세 이상 외국인들 중 UAE 내 2백만 디르함 (약 6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거나, 1백만 디르함 (약 3억원) 이상을 저축하고 있거나, 월 2만 디르함 (약 6백만원) 이상의 실수입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위 조건을 계속해서 충족시킬 경우 5년 뒤에도 연장 가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장기 체류 비자 도입 배경
GCC 국가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담당해 온 외국인들의 장기 체류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었습니다. 석유가 본격적으로 발굴되면서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1970년대 우리나라가 중동건설 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입장에서 볼 때도 그간 일자리를 차지해왔던 이웃 아랍국가 노동자들에 비해 한국인 노동자들의 가성비가 좋은데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해서든 가족들까지 데리고 와서 정착하려는 아랍인들과 달리 말도 문화도 다른 이 곳에서 오래 있을 생각들은 않할 것이라는 조건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석유 수익으로 떼돈을 벌었을 뿐, 워낙 자체적으로 발전한 산업이 없다시피 하기에 카팔라 시스템에 영속시킨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제활동에 의존한 경제체제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왔고, 이는 인프라 구축에 이어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부동산 개발사업 확장 및 내수시장 활성화에 한계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관광산업을 육성하여 호텔 업계를 발전시켜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 체류자들을 위한 것이고, 정작 거주자들은 체류기간 동안 주택을 구입하는 것보다 임대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비싼 임대비를 감당하기 힘든 저임금 거주자의 경우엔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단체생활을 하던지, 아니면 쉐어하면서 말이죠.
공급도 늘어나겠다 아무리 현지 언론에서 외국인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임대해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집을 구매하는 것이 보다 가성비가 좋다고 떠들어봐야 좀처럼 외국인 거주자들의 주택 구입률이 좀처럼 늘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집을 구매해서 터를 잡고 생활할 필요성을 고려해볼만한 장기 체류가 보장되지 않았으니까요. 2~3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기에 체류기간 중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임대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수입을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송금하는 생활패턴이 고착화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가족들과 함께 터를 잡으면 해외송금으로 유출될 상당한 자금이 내수시장에 풀릴텐데 말이죠...
이는 영주권을 도입한 카타르던, 장기 비자를 도입한 UAE던 세부 조건은 다를지언정 공통적으로 특정 직업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자격요건에 명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현재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실제로 집을 구매해서 가족들과 정착하며 오랫동안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외국인들이 필요하니까요.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갖출 수 있다는 건 해외 투자자 아니면 전문직종 종사자일테니 이들을 통해 해외투자 유치와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기반으로 삼고, 내수시장을 더욱 활성화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나라의 인프라를 세웠고 가능하면 오래있고 싶어하려는 미숙련 노동자들은 거주기간에 상관없이 이 논의에서 빠져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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