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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잊혀질 때마다 튀어나오는 "제2 중동 붐"이라는 공허한 허상

둘라 2022. 7. 21.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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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국가에 진출한 청년들이 맞이하게 되는 현실

최근들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던 업계 중 하나인 항공업계가 본격적인 인력 충원에 들어가면서 에미레이츠, 에티하드, 에어 아라비아, 카타르 항공 등에 취업하여 새롭게 이 동네에 나오는 항공 승무원들의 vlog를 유튜브에서 종종보곤 합니다.

중동 (걸프지역) 항공사의 승무원은 전문적인 라이센스와 경력없이도 취업에 성공하면 좋은 조건으로 근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직종입니다. 가령 두바이의 국적 항공사인 에미레이츠 그룹 채용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승무원 초봉은 기본급 4,260디르함 (현재 환율기준 약 152만원)에 각종 수당을 더해 평균 9,770디르함 (현재 환율기준 약 350만원)에서 시작한다고 하죠. 개인 소득세가 없으니 공개된 급여가 실수령액인데다 급여 외에 레이오버 시 경비 제공, 항공임 할인, 숙소 및 출퇴근 교통편 제공, 휴가시 무료 항공권 제공 등의 사내에서 제공되는 혜택은 물론 (링크), 항공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대한항공 승무원들도 부러워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전문적인 라이센스와 경력 없이 걸프 산유국에 취업하면 모두가 이러한 대우를 받으며 근무할 수 있을까요?

UAE에 7년 넘게 살면서 평생 못 가볼 호텔 투어를 하다보니 보기 드물게 호텔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5성급 럭셔리 호텔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친분이 생겨 이야기를 나누다 급여 수준을 알게 되고는 깜짝 놀랐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는 럭셔리 호텔에 근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두바이 거주자가 주류 판매점에서 술을 살 때 필요한 주류면허를 신청할 수 없었다고 하니 말이죠. 신청자격이 안되는 이유는 딱 하나, 주류면허 신청자격 조건에 명시된 월급여 기준액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주류면허 발급조건을 완화하면서 없어졌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두바이의 주류면허는 월 3,000디르함 (당시 환율기준 약 90만원/현재 환율기준으로도 약 107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 21세 이상 비무슬림들만이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회사에서 숙소나 교통편 등 기본적인 베네핏은 제공해준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건 몇 십만원 밖에 안된다는 것이죠. 식음료 매장에서 근무하면 손님들의 팁을 통한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지만, 프론트데스크에서는 기본급은 조금 높지만 팁이 없어 실수령액 기준으론 인상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전문적인 라이센스 없이 신입으로 항공 승무원과 호텔리어라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한 서비스업에 취업했지만, 현실은 극과 극이죠.

이에 덧붙여 경력으로 나오려면!?
어느 정도 괜찮은 급여를 받으려면 당연히 경력이 필요합니다. 라이센스가 필요한 전문직이더라도 최소한의 경력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UAE에 나오기 위한 서류를 준비할 때, 제가 제출한 이력서에 언급한 모든 이력을 입증할 수 있는 증명서를 대사관에서 공증받아 제출해야만 했었습니다. 이미 십수년 전에 폐업해 버린 회사의 재직 증명까지도 말이죠. 아무리 이력서에 명시했다한들 이를 입증할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 그만큼 급여가 삭감되어 재조정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증비만 백만원 넘게 썼던 기억이 나네요. 안 그럴것 같은 이 나라에서도 취업시 증명서를 엄청 중요하게 따지거든요.

한마디로 제2 중동 붐을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고 외쳤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소리라는 얘기입니다. 신입부터 항공 승무원 같은 대우를 받으며 근무할 수 있는 청년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올려고 해도 일반적으로 입증가능한 경력이 없으면 굳이 여기에 나올 이유가 없는 기대 이하의 오퍼가 기다릴테니까요.

20세기 중동 붐의 배경, 그리고 21세기의 현실

물론 그 분들이야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금기이자 신화가 되었던 중동붐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몇 년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장기 비자에서부터 영주권, 국적 부여 등을 제시하며 부자와 전문인력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낮은 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찾아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발전하지 않은 걸프 국가들은 나라 자체를 옮길 수 없기에 신규 인력 채용국가를 바꾸고 "카팔라"라 불리는 스폰서 제도를 활용해 악랄하게 통제하는 방식으로 저임금 상태를 유지해왔었습니다. 오죽하면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소릴 들었을까요. 2020년이 되어서야 걸프 국가 중 최초로 카타르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는데, 당시 책정된 최저임금이 월 1000리얄 (약 33만원)이니 뭐...

우리나라가 1970년대 중동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외화벌이를 위한 국가차원의 지원 하에 아버지 세대의 근면성실함이 바탕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오일쇼크 이전까지 인근 아랍국가에서 이주해 왔던 아랍인 인력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가 낯선 환경 속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와 정착할 생각도 없는데다 낮은 인건비 대비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그야말로 갓성비 만점의 인력들이었기에 이들 국가, 업체, 근로자와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죠.

그 발언은 경제 위기가 끝난 2010년대 초반 사우디의 메가 인프라 프로젝트 착수, UAE의 엑스포 인프라 구축 카타르의 월드컵 인프라 구축 등의 대형 프로젝트들이 쏟아지던 때였기에 기회를 잡아보자는 이야기였겠습니다만, 바램과 달리 그 기회가 "중동 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위력을 갖기에는 애시당초 불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잇다른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외국 업체와 외국 인력이 다시 유입되었지만, 외국인 인력들의 평균급여는 오히려 경제 위기 전보다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걸프 산유국들이 저유가 시대에 혹독하게 시달려봤기에 고유가 시대라고 해서 돈을 대책없이 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공부문이고 민간부문이고 상관없이 악착같이 허리띠를 쪼여가며 비용을 낮추는데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여기에 맞추려다보니 인건비가 올라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경력직 대신 신입, 혹은 그보다 훨씬 싼 네팔 인력들로 대부분의 신규 일자리를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네팔 인력의 인건비가 올라가면, 더 싸게 고용할 수 있는 또다른 인력 공급국가를 찾게 되고, 최근 UAE의 경우엔 인해전술로 승부를 거는 중국 건설업체들이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죠. 이런 상황 하에선 시작부터 큰 이익을 남기기 힘든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기까지 지연되면 엄청난 페널티가 청구되는 건 덤이죠. (제때 끝나는 공사를 본 적이 없다는게 함정.)

너희들이나 가라 중동 발언이 그렇게 잊혀지나 싶었는데, 또다시 찾아온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제2 중동 붐 타령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제2 중동 붐 타령은 2012년의 이명박 대통령, 2015년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이군요.앞서 두 대통령이 제2 중동 붐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이여 중동에 진출해라!"라는 당부를 남겼던 것과 달리, 이번엔 청년들보고 가라는 얘긴 않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 사람 모두 중동에 대한 현실 인식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제2의 중동 붐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

다양한 난이도의 프로젝트가 나오고 있어서 한국 건설, 플랜트 업체들이 이 흐름을 타고 좀더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는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중동 붐으로 이어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쌍용건설이 짓고 있는 로얄 아틀란티스 리조트 & 레지던스. 올해 개장 예정


일단 회사 입장에서 프로젝트 수주를 통해 이름은 알릴 수 있겠지만, 난이도 있는 공사가 아니라면 최저가 입찰과 가격 후려치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을 상대로 마진을 남기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2010년대 초반 플랜트 호황기에 공격적인 영업으로 입찰에 성공했지만 너무나 공격적이었던 나머지 부대비용 계산에 실패해 이익은 고사하고 기록적인 손실만 안겨줘 회사를 위기에 내몰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이런 현실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한 회사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없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저임금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업계에서 한국 업체가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인건비이기에 과거와 달리 프로젝트를 수주해도 내실있는 한국인 채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중동 붐을 일으킬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국가도, 업체도, 노동자도 모두 행복해야 붐이 확대될텐데, 지금은 지난 세기처럼 모두 다 행복해질 순 없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 현장 답사의 기억. 돌산을 가로질러 띄엄띄엄 자리잡은 집에 전기를 넣어주는 공사였다.


대기업에서 한국인 정직원을 보내려면 (이 동네 기준에선 안그래도 엄청나게 비싼) 급여에다 그 이상의 수당, 그리고 베네핏 등이 제공됩니다. 정기 휴가만 놓고 봐도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 사우디 지잔 내 예멘 국경지역의 현장사무소 직원으로,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 젯다에 있는 건설회사 본사에서 일했을 당시엔 1년에 4주 휴가를 받았었지만, 다른 대기업에서는 6개월에 3주, 그 후엔 분기에 2주로 정기 휴가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공사비에 포함되는 비용이죠.

현대건설이 세운 아인 두바이


경력있는 한국인 정직원을 고용할 비용이면 현지 사정에도 익숙한데다 숙련된 외국인 직원을 더 많이 구할 수 있고, 애시당초 한국인은 관심도 없는 미숙련공들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로 메울 수 있기에 결과적으로는 회사 구조가 소수의 한국인 직원과 자국민 직원, 그리고 절대 다수의 외국인 직원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험하고 급여가 낮은 업종에서 일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어들어 외노자로 대체하는 마당에 그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고 나와 일하려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것이 개인적으로 건설업계를 떠났던 10년 전 상황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해서든 비용을 절감하다보니 한국인 직원들에 대한 베네핏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지원자를 찾기 힘드니 결국 한국인 직원은 상대적으로 엄청 싼 외주인력으로 대체된 추세라고 하죠. 당연히 전문성도 결여되고 현장에서의 경험치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러한 흐름은 단발성 수주로 끝날 수 밖에 없게 되죠. 이런 고민도 그나마 한국업체가 비벼볼 수 있는 부르즈 칼리파, 아인 두바이, 로얄 아틀란티스 리조트 등 랜드마크 같은 난이도 높은 프로젝트에서나 가능할 뿐, 일반인들 눈에도 쉽게 띌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공사에서는 경쟁력 자체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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