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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벌써 20년째 이어져 온 걸프지역과의 인연을 되돌아보며...

둘라 2020. 9. 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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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예멘)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0년 9월 1일 둘라는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2년 전 어학연수로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다녀왔던 요르단에 이어 이번에는 직장인으로 두번째 출국지인 사우디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간 기착지였던 마닐라에선 기체고장으로 인해 리야드행 비행기가 결항되어 계획에도 없었던 마닐라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체크인 카운터에서 진상짓을 벌인 한 일행 덕분에 15명이나 되었던 일행이 전부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글되는 행운을 얻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우디야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는 정말 넓은 것 빼고는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심지어 개인용 모니터도 없;;;;;;; (요즘 사우디야는 그때에 비하면 퍼스트와 비즈니스에 나름 힘을 싣고 있습니다만...)

 

리야드에 도착해서 또 국내선으로 환승하여 남서부에 있는 지잔까지 간 후 거기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달려 도착한 곳이 걸프지역과 첫 인연을 맺게 된 아르다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사우디하면 흔히 연상되는 사막....따위는 가까운 곳에 없고, 숙소에서 바로 눈 앞엔 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넘어가면 예멘), 주위엔 우기로 인해 녹색이 많이 보였던 도로변의 현장 캠프. 

 

1년 10개월 살았던 그 곳이 지금까지 20년 동안 이어져 온 걸프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지잔] 추억여행 (2) 내가 살았던 곳을 들르다. 참조)

 

(인터내셔널 나이로) 24살이었던 당시 그 곳에 갔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얘기로만 듣던 사우디를 가보고 싶어서.

 

지금이야 UAE에도 한국어 과정이 개설되는 등 교류할 기회가 생겼지만, 대학생 시절이던 지난 세기말까지는 아랍어를 전공한다고 해도 걸프지역에 대해서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학생으로서는 교육 프로그램이 그나마 괜찮은 요르단이나 시리아, 혹은 이집트나 튀니지에 관심이 있지, 상대적으로 사우디, UAE, 카타르 등은 그다지 어필할 때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요르단으로 어학연수를 간 김에 인접한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이스라엘을 여행했었습니다만...

 

4학년 당시 과 취업대표를 얼결에 맡게 되었지만, 학과장실에 취업의뢰라고 들어온 곳은 아직도 기억나는 기아자동차와 대한통운, 그리고 장안평 중고차 업체였을 정도로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기 힘들었던 당시, 가능하면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고 싶어 알아보던 차에 졸업 후 곧 세팅되는 사우디 건설현장에 아랍어 통역이 필요하다는 조그만 단종업체를 소개받게 되어 가보기 힘들다는 사우디에 갈 수 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덥썩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 200 (그 중 180은 한국에서 지급, 사우디 현지에선 할 일이 없을 거라며 용돈으로 쓰라고 20만원에 해당하는 600리얄 정도만 받음)에 1년에 한 달 휴가라는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조건이었지만, 당시에는 전공을 살려 사우디를 갈 수 있다는 점에 혹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급여가 지급되는 바람에 납부된 세금 덕분에 회사가 십수년 전에 폐업해 만들 수도 없는 경력 증명서를 갈음할 서류가 남게 되어 현 직장에 올 때 큰 도움을 받았었죠.) 

 

그렇게 졸업 후 사우디 촌구석에서 시작된 걸프 지역과의 인연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었습니다. 당초 아랍어 통역 겸 현장 사무소 본부장 지원 업무 정도로 알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불과 몇 달만에 행정을 맡으셨던 본부장님이 비자 문제로 사우디를 떠나 복귀하지 못하고 대체 인력도 구하는데 실패하면서 사람이 없고 유일한 행정직원이라는 이유로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제가 퇴사할 때까지 현장 사무소 행정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야말로 멘붕.

 

사수도 없이 사수가 되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야 했던 상황도 황당한데, 경험치나 연륜 따위가 없는 20대 중반의 사회생활 초보가 외부에서 영입한 현장소장과 회사 부사장쪽 사람들인 현장 사람들로 양분된 50대 아저씨들의 파벌 싸움의 중간에 끼어 난처한 상황에 처할수 밖에 없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숙소에서 같이 생활했던 현장 사람들과 있다보면 싸데기를 마시면서 현장 소장에 대한 불평불만을 듣게 되고, 보고하러 현장 소장실에 가게 되면 현장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현장 소장의 하소연을 들어줘야만 하고... 그런 대립을 중재하라는 역할도 주어졌을 60대의 본부장님은 일찌감치 사라져서 자취를 감춰버렸으니, 사회경험이 전무한 20대 중반의 새내기가 모든걸 감당하기엔 벅찬 1년 10개월이었습니다. 

 

남들 아플땐 밤새 병원도 따라가 통역도 해주고, 별 황당한 이유로 다른 사람 성기 주변의 털까지도 면도질 해봤지만 정작 내가 아플 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까지 직접 운전해서 갔을 때의 서러움만큼이나 의지할 곳 하나없이 혼자 레벨업하고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배째라고 나자빠져봤자 그 뒷감당도 결국은 제가 해야 될 상황이었으니까요. 

 

(산동네인 만큼 하늘도 그만큼 가깝게 느껴졌던 카미스 무샤이트)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은 아니니 나잇값을 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던 첫 번째 사우디 생활을 마무리한 후, 한국에 돌아와 몇몇 업체를 다니며 중동관련 업무를 맡다가 6년 만에 다시 사우디로 돌아오게 됩니다. 첫번째 생활지가 주변에 산이 보이는 동네였다면, 두번째 생활을 시작한 곳은 이번에도 사막과는 거리가 먼 산동네 카미스 무샤이뜨. 카미스 무샤이뜨의 높이는 한라산보다 약간 높은 해발 1,998미터로. 카미스 무샤이뜨가 있는 산동네 아시르 지역은 해발 3천미터 대의 수다 지역에 이르기까지 사우디의 대표적인 고산지대입니다.

 

첫번째 사우디 생활을 했던 아르다 지역은 근무 당시에 인터넷이 안되어 400kb짜리 엑셀 파일을 메일에 첨부해서 본사에 보내기 위해 왕복 두 시간 거리인 지잔 시내에 있는 인터넷 카페를 다녀와야 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개설해 두었던 다음 카페도 후배에게 맡겼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카미스 무샤이뜨의 인터넷 상황은 스트리밍을 보기는 불가능했지만 (70분짜리 드라마 한 편 보는데 잦은 버퍼링으로 인해 두 시간...ㅎㄷㄷ) 블로그 활동을 하는덴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단순한 뉴스가 아닌 본격적인 사우디 생활기를 포함한 정보를 공유하고 무려 1년짜리 사보 연재까지 맡기에 충분한 환경이었죠.

 

그리고 카미스 무샤이뜨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1년 6개월 만인 2010년 4월, 회사 본사가 있는 젯다로 이사하면서 사우디 생활 3년 4개월만에, 사우디에 첫 발을 내딛은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도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아무것도 없던 깡촌에서 소도시를 거쳐 사우디 내에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도시 젯다에서의 생활 (보수성을 탈피한 요즘의 사우디는 젯다보다 리야드가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만...)  

 

이즈음해서 블로그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2009년 이천수의 알나스르 입단을 계기로 블로그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가 된 사우디 축구 소식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사우디 리그 소식을 시작으로 한국 선수들이 뛰는 카타르 리그와 UAE 리그까지 10년 넘게 걸프지역 주요 리그 소식을 꾸준하게 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매체로 축구가 전문분야가 아님에도 누군가에게는 걸프축구 전문 블로거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우디를 떠날 당시 둘라님이 사우디를 떠나면 누가 제 소식을 전해주겠냐는 선수의 걱정이 무색하게 오히려 무대를 카타르와 UAE 리그 소식까지 커버하는 매체가 되었네요.

 

걸프지역 소식을 전하게 되다 보니 남들이 잘 모를거라 생각한듯 정확한 팩트 전달보다는 클릭질 유도에 혈안된 저질 정보와 기자의 사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을 쓰는 국내 매체들의 수준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도, 살면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축구 선수들을 실제로 만나는 경험도 하게 되었죠.

 

젯다에서 2년을 더 근무한 뒤 5년 넘는 사우디 생활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2박 3일 동안의 리야드 여행을 끝으로 사우디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 대학교 졸업 당시 관심이 있었으나 여건상 선뜻 할 수 없었던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됩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보니 매체를 뒤지고 경험담을 정리하는 것 외에 좀더 시야를 넓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대학원 동기들과의 나이차가 교수님들과의 나이차보다 더 나는 늦깎이 석사 과정.

 

시야를 넓혔으되 박사까지 이어서 공부할 체질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 석사 과정에선 사우디 근무 중 관심을 가지고 직접 경험했던 사우디제이션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되었고, 방학기간을 이용해 처음 방문한 UAE, 카타르, 바레인 여행을 통해 사우디는 나름 오랫동안 경험해봤으니 만약 다시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UAE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다행히 기회가 되어 직장 생활과 논문을 통해 15년 동안 인연을 이어왔던 사우디를 떠나 UAE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 밖에 쉬지 못했던데다 워낙 이동거리가 넘사벽으로 멀어 주말 여행이 힘들었던 사우디 건설회사의 생활과 달리 이동거리가 상대적으로 훠~~~~~~얼씬 짧고 주말이 보장되는 공공부문에서 근무하다보니, 사우디 시절의 블로그와 달리 UAE에서는 기존에 다뤄오던 주제에 더해 여행과 FLEX한 컨텐츠를 추가하여 블로그의 세계관을 더욱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국내 어디에서 볼 수 없는 독점 컨텐츠를 다뤄도 주목받을 일이 없던 블로그가 FLEX한 컨텐츠를 다루게 되면서 종종 다음 메인에 걸리는 일이 생기게 된 것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추가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음 덤.

 

UAE 내에서 어딘가를 많이 다니고 경험하는 것은 이런 것조차 할 수 없었던 사우디 생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해소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주말에도 제대로 쉬거나 분위기 전환을 못해 몇 년동안 누적되어 온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대폭발하면서 두번째 사우디 생활을 접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었기에 그런 경험을 또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대학교 새내기 때 국회 도서관을 뒤져도 제대로 된 한국어 자료가 많지 않음에 아쉬워하고 나름대로 자료를 모아 자료집을 만들어 보았던 경험, 그렇게 만든 자료를 공유해봤더니 피드백은 없고 자기가 작업한 자료인양 올리던 홈페이지를 봤던 기억, 그리고 나름의 이색적인 외노자 생활과 누군가는 사심이 들어간 선입견이나 MSG가 가미되지 않은 이 지역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제대로 공유하고 싶은 바램은 블로그 (둘라뱅크 아카이브와 둘라의 아랍 이야기)-페이스북 페이지-트위터-인스타그램 등이 엮인 현재의 둘라뱅크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걸프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지 10주년이 되는 날은 사우디 젯다에서, 20주년이 되는 날은 UAE 라스 알카이마에서 맞이하게 되었네요. 사우디에선 아르다, 카미스 무샤이트, 젯다 순으로 상경했던 것처럼 UAE에서도 라스 알카이마에서 두바이나 아부다비로 상경하는 날이 오게 될까요? 10년 뒤에는 어디에서 맞이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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