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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격변의 사우디, 지난해 발렌타인 데이에 이어 올해부터 크리스마스를 챙기기 시작하다!

둘라 2020. 12. 2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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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공식적으로 즐길 수 없는 나라 중 하나가 사우디였습니다. 

 

거주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들이 많은 이웃 걸프 국가들의 경우 크리스마스가 휴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상품 판매와 이벤트를 내놓으며 즐기는 연례 행사가 된 것과는 달랐습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UAE의 경우엔 일찌감치 10월 중순부터 매장들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용품을 팔기 시작하고, 12월초 내셔널 데이 연휴가 끝나면 대형 쇼핑몰 내부에도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이 설치되고 몰 오프 에미레이츠 같은 곳에서는 크리스마스 2주전 즈음이면 슈톨렌 자선 케익 판매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올해에도 몰 오브 에미레이츠의 슈톨렌 케익 판매 이벤트는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두고 어김없이 열렸고,

 

그 다음 주에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된 바 있습니다. 참고로 UAE는 1일 확진자 수가 1천명대를 넘어선지 몇 달되었습니다만...

 

무슬림 국가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탄신일이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지만, 기독교와 달리 예수를 하늘에서 보낸 선지자 중 한 명으로 보는 이슬람에 있어서 이 날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가 없음에도, 이슬람 외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면이 더 큽니다만....) 이슬람에 있어서 예수 다음에 내려온 선지자이자 마지막 선지자로 여기는 무함마드 탄신일에 대한 이들의 자세를 보면 더더욱 말이죠.

 

사우디는 무함마드 탄신일을 챙기는 것도 우상숭배의 일환이라며 휴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반면, 공휴일로 지정한 UAE의 경우에도 특별한 판매 이벤트는 커녕 무함마드 탄신일 전날 해질 무렵부터 당일 저녁까지 술과 유흥을 금지하는 드라이 나이트를 선포할 정도로 축제 분위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공휴일은 아님에도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크리스마스와 다르게 말이죠. 

 

이런 상황이다보니 사우디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발렌타인 데이만큼이나 공식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었지만, 수십년 동안 사우디 사회를 암흑기로 만들었던 종교계의 위세가 꺾인 2016년 이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끝에 2019년 2월이 되어서야 발렌타인 데이가 사우디 내에서도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현재의 검찰처럼 영원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할 것 같은 종교세력의 상징이었던 종교경찰의 권한을 무력화시킨 2016년의 칙령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744년 세속화되는 세상이 싫었지만 힘이 없었던 원리주의 종교 세력과 약간의 힘은 있었지만 넓은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심점이 필요했던 세속화된 사우드 왕가가 연합하면서 시작되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사우디의 역사는 가장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두 세력이 연합한 만큼 그야말로 종교계와 사우드씨족간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권력 투쟁사이기도 합니다. 

 

사우드 왕가는 사람들을 연합시키는 정신적인 구심점으로서 이들이 필요했지만, 집단화를 피할 수 없는 종교의 특성상 보다 많은 권한과 힘을 추구할 수 밖에 없기에 두 세력의 헤게모니 쟁탈전의 결과는 바로 사우디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우드 왕가는 종교세력을 억제하면서 온건한 사회를 유지해 왔었지만, 1979년 11월 20일 이란 이슬람 혁명의 여파로 발생하게 된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으로 인해 극단적인 종교세력이 사우드 왕가를 누르고 종교경찰을 앞세워 사우디 사회를 통제하게 됩니다. 종교적으로는 위엄이 없는 사우드 왕가가 자신들을 이슬람 종주국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였던 양대 성지의 수호자라는 명분이 여지없이 작살났으니 말이죠. 이 트라우마는 워낙 강렬했던 탓에 점거사건의 주범이었던 주하이만 알오타비의 이름과 당시의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공식적으로 다루기까지 40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랜드 모스크 점거사건이 발생하기 이전 온건했던 사우디 사회의 모습에 대한 추억은 지역에 따라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사우디 로맨틱 영화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독실한 종교적인 가치관과 거리가 있는 젊은 세대들이 사우디 사회의 다수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우드 왕가는 막강했던 종교세력의 힘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해왔고, 온건한 방향으로 이를 추진해왔던 압둘라 국왕 사후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그의 아들이자 사실상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의해 이들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하면서 "관용적인 이슬람"을 앞세워 사회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종교세력을 억제하지 않으면 비전2030 실현에 있어서 내부적으로 큰 장애물이 될테니까요. 그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발렌타인 데이가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잡은 데 이어 올해부터는 크리스마스까지 챙기기 시작하게 된 셈입니다. 

 

 

사우디에서는 분위기를 대놓고 낼 수 없었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연말에 휴가를 떠나거나, 여의치 않으면 크리스마스 용품을 구하기 위해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한 밀수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우디 내 기독교인들이나 비무슬림 거주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뜻깊은 2020년이 될 것 같습니다.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휴가를 떠나 모국에 있는 가족친지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공식적으로 즐길 수 있게 바뀌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을테니까요.  

 

사우디에서 3번째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2022년 크리스마스에는 사우디 영자 신문지 아랍뉴스가 앞으로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관련 뉴스를 지면에 보다 많이 할당한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5 DEC 2022_Arab New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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