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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쿠웨이트

[정치] 쿠웨이트 통치자 셰이크 사바흐의 서거와 셰이크 나와프의 취임으로 본 쿠웨이트의 독특한 왕위계승체계

둘라 2020. 10. 1.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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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메디컬 체크를 한다며 왕세제 셰이크 나와프에게 일부 권한을 넘겨준 후 미국으로 떠났던 걸프 지역 통치자 중 최연장자 셰이크 사바흐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는 2020년 9월 29일 오전 입원 중이던 메이요 클리닉에서 향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날인 30일 쿠웨이트는 왕세제였던 이복동생 셰이크 나와프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를 통치자로 확정하고 취임식을 마친지 몇 시간 후 미국에서 돌아온 셰이크 사바흐의 시신을 받아 장례 예배를 치루고 술라이비카트 공동묘지에 매장되었습니다. 카타르 통치자 셰이크 타밈은 이웃 국가 통치자 중 그나마 대화가 통했던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며 개인자격으로 몸소 쿠웨이트로 날라갔다고 하죠. 셰이크 사바흐야말로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카타르 외교분쟁의 해결을 중재하겠다며 백방으로 노력해 왔으니까요. 


(공동묘지에 안장된 셰이크 사바흐)

 

올초 오만 통치자 술탄 까부스의 서거 때와는 달리 쿠웨이트는 아주 순탄하게 왕위가 계승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만의 경우 술탄 까부스가 서거할 때까지 지정된 공식 후계자가 없었기에 그의 건강문제가 대두되었던 지난 몇 년간 과연 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가 관심의 대상이었고, 후계자는 그의 유서 속에서 처음 공개되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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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쿠웨이트는 일찌감치 셰이크 사바흐가 취임하던 해 왕세제로 지명했고 통치자 대행이었던 셰이크 나와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으로 쉽게 전망했고,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현 쿠웨이트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보다 두 살 많은 사우디 살만 국왕과 함께 원로 세대의 마지막 통치자가 될 (것으로만 보였던....) 그의 나이는 83세.


쿠웨이트의 후계자 선정과 취임 과정은 다른 걸프 국가와 다른 두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1.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파벌간 교차계승제

우선 알사바흐 씨족의 7대 통치자였던 무바라크 사바흐 알사바흐 (재임 1896년~1915년)의 직계 후손 중에서 씨족 의원회가 선정하며, 그의 자녀들 중에서도 그의 사후 쿠웨이트를 이어서 통치했던 셰이크 자비르 무바라크 알사바흐 (1915~1917년)과 차남 셰이크 살림 무바라크 알사바흐 (1917년~1921년)의 직계 후손들로 왕위를 이어왔습니다.


(셰이크 무바라크 사바흐 알사바흐)


(셰이크 자비르 무바라크 알사바흐)    (셰이크 살림 무바라크 알사바흐)


후계 구도가 자비르와 살림의 후손들 중에서 선정되다 보니 두 파벌 간의 권력투쟁이 심해지자 암묵적으로 정해진 룰이 양대 파벌이 번갈아가면서 후계자를 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자비르파가 통치자가 되면 살림파를 후계자로 정하고 그가 통치자가 되면 자비르파를 후계자로 지정하는 방식으로요.



차기 왕위 계승자인 크라운 프린스는 새 통치자가 취임한 지 1년 이내에 암묵적인 룰에 따라 후계자를 선정해야만 하는데, 고 셰이크 사바흐가 셰이크 나와프를 크라운 프린스로 지명했을 때 사바흐 씨족 내에서는 약간의 진통이 있었습니다. 관례대로였다면 살림파에서 크라운 프린스를 지명해야 했지만, 셰이크 사바흐는 자신의 이복동생 셰이크 나와프를 왕세제로 지명했으니까요. 하지만, 내부의 반발이 크게 확산되지 못하고 사그라든것은 셰이크 사바흐가 취임했던 2006년 당시 시점에서 살림파엔 내세울만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지사부터 내무부, 국방부, 노동부 장관 등을 역임했던 그를 상대할 만한 인재가 없었을 테니까요.



2. 지명된 통치자 거부권을 가진 쿠웨이트 국회 

알사바흐 씨족 내에서도 자비르파와 살림파 후손 중에서 왕위를 직계, 혹은 교차 계승시키는 특이한 승계 구조와 더불어 다른 이웃 GCC 국가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쿠웨이트만의 특징이라면, 바로 국회의 역할에 있습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장점만을 따와 1962년 제정된 쿠웨이트 헌법에 따라 이듬해 신설된 쿠웨이트 국회는 명목상의 자문역에 불과할 뿐 국정 운영엔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이웃 걸프국가들의 의회와 달리, 입헌 군주제 하에서의 쿠웨이트 국회는 알사바흐 씨족 위원회에서 지명한 통치자, 혹은 크라운 프린스의 취임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국정 운영에 실질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통치자가 취임하면 궁을 방문하여 새 통치자에게 충성 맹세식을 갖는 이웃 나라들과 달리 쿠웨이트 통치자는 국회에 출석하여 취임 선서를 할 정도죠. 비전을 내세운 이웃 국가들이 변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국가발전계획을 진행해 나갈 때, 현실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정부에서 변화를 꾀하려고 들 경우 자국민의 이익 반영에만 안주해 조금만 관점이 다를 경우 견제가 아닌 어깃장을 놔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의 쿠웨이트를 보면 국회의 기능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국회가 생긴 이후 통치자에 의해 몇 차례 해산되었다가 결국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죠. 



국회의 통치자/크라운 프린스 거부권 발동은 한 달 사이에 세명의 통치자가 바뀌면서 자비르파와 살림파의 교차계승 구도가 깨지게 되었던 2006년 1월 고 셰이크 사바흐 취임 과정에서 국회가 지명된 통치자를 거부한 것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06년 1월 15일 3대 통치자였던 셰이크 자비르 알아흐마드 알사바흐가 서거했을 때, 통치자 자리를 계승한 사람은 관례대로 크라운 프린스가 되었던 사아드 알살림 알자비르였습니다. 워낙 그의 나쁜 건강 상태로 인해 왕위 승계를 거부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통치자가 되겠다고 나섰지만, 셰이크 자비르의 장례 예배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을 정도로 건강상태는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고, 국회에서는 그가 국가 통치는 고사하고 취임식에서 두 줄짜리 취임 선서조차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우려가 대두되어 국회에서는 셰이크 사아드의 취임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셰이크 사아드가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통치자 취임식이 예정되었던 1월 24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 이에게 넘기겠다는 공식 서한이 도착하기 직전에 국회는 그의 통치자 취임건을 부결하면서 고 셰이크 사바흐가 새로운 통치자가 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퇴임 이후 알사바흐 씨족 내 교차계승 구도는 결국 유명무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취임 선서도 못하고 9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쿠웨이트 최단기 통치자 셰이크 사아드 알살림 알자비르)


그리고 쿠웨이트의 새로운 통치자가 된 셰이크 나와프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는 취임 8일만인 10월 7일 차기 왕위 계승자가 될 크라운 프린스에 자신의 이복동생인 셰이크 미슈알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를 지명하고 8일로 예정된 국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셰이크 미슈알 알아흐마드 알자비르 알사바흐 왕세제 지명자는 이복형보다 세 살 어린 80세의 왕자로 1960년 런던에 있는 헨돈 경찰훈련대학 (Hendon Police College)를 졸업한 후 내무부 내 여러 직위를 거치며 경험을 쌓은 후 현 쿠웨이트 통치자인 셰이크 나와프에 이어 2004년부터 현재까지 쿠웨이트 국가방위군 부사령관을 맡고 있습니다. 내무부를 중심으로 다양한 부처에서 경험을 쌓은 현 통치자 셰이크 나와프와 달리 셰이크 미슈알은 내치 및 치안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국회 승인을 거쳐야 최종 확정되겠지만, 셰이크 미슈알의 왕세제 지명은 일단 파벌간 교차계승제가 의미가 없어졌으며, 왕실 내 세력다툼에서 주도권을 잡고 갑툭튀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로 인해 노인정 왕실에서 확 세대교체가 되어버린 사우디와 달리 쿠웨이트의 세대교체는 여전히 요원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91세에 사망한 전 통치자, 83세의 현 통치자, 80세의 왕세제 지명자까지... 마치 81세에 취임하여 90세에 사망했던 압둘라 사우디 국왕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통치한 9년 동안 두 명의 왕세제가 국왕에 오르지 못한채 사망하고 세번째 왕세제였던 살만이 결국 79세의 나이로 사우디 국왕이 되었죠. 산유국이지만 방만한 국가운영으로 재정적으로는 부실하다고 알려진 쿠웨이트야말로 변화가 시급한 시점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쿠웨이트 국회는 임기 마지막 날인 10월 8일 만장일치로 셰이크 미슈알의 왕세제 지명을 승인하는 것으로 안정을 택했습니다. 외교계 인사들과 정치분석가들은 새 통치자인 셰이크 나와프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성정과 나이를 감안하면 (그래봐야 3살 차이긴 하지만...) 새 왕세제 셰이크 미슈알에게 보다 많은 권한이 이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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