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끝난 라마단 기간은 아랍지역 방송계에서도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즌입니다. 한달 간의 단식 기간 동안 활동반경이 극도로 좁아질 수 밖에 없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들이 집에 함께 모여 각종 TV프로그램을 보고 즐기면서 허기를 잊는데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러한 시즌이기에 아랍지역의 방송국들은 한 달간의 라마단 기간에 방영할 특집 드라마, 쇼 프로그램 등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애씁니다. 다변화된 시청 환경 속에 아랍지역 역시 TV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지만요.


올해 라마단 기간 중 편성된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 중 여러가지로 화제를 모았던 MBC 드라마 (우리나라 MBC 아님!)를 통해 방송된 30부작 특집 쿠웨이트 드라마 "사끄 알밤부 (Saq Al Bamboo)"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던 첫번째 이유는 아랍 세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쿠웨이트의 젊은 언론인이자 소설가 사우드 알사누시가 쓴 소설 "사끄 알밤부"는 2013년 국제아랍소설상 (International Prize for Arabic Fiction) 대상 수상작입니다. 국제아랍소설상은 우수한 현대아랍문학 작품을 발굴하여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소개함으로써 아랍작가들에게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얼마전 소설가 한강이 자신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가 되어 화제를 모았던 맨부커상을 운영하는 부커상 재단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어 (사실은 아니지만) "아랍의 부커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 역시 대상 수상 후 영어로 번역 소게 되어 가디언지와 파이낸셜 타임즈 등 해외 유수 언론에 서평이 실린 바 있습니다. 


가디언지의 서평 => 클릭!

파이낸셜 타임즈의 서평 => 클릭!

인디펜던트의 서평 => 클릭!


지면에 깊게 뿌리를 대나무 줄기 (Bamboo Stalk)라는 의미를 가진 소설 "사끄 알밤부"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쿠웨이트 가정에 일하러 온 가사도우미 조세핀이 주인집의 버릇없이 자란 외동아들 라쉬드와 사랑에 빠져 비밀결혼식까지 올렸지만, 그녀가 임신하여 아이를 갖게된 것을 알게 된 주인집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라쉬드의 어머니인 가니마의 등쌀에 못이겨 라쉬드는 조세핀과 2개월도 안된 아들을 필리핀으로 돌려보내며 이혼하게 됩니다. 자신의 유일한 손자가 자기집 가사도우미의 자식이란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죠. 필리핀에서 엄마와 함께 어렵게 살던 호세는 18세가 되던 해 어렸을 때부터 엄마로부터 천국이라는 얘길 들었던 아버지의 고국 쿠웨이트로 가지만, 아버지 라쉬드는 이미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 때 전사했음을 알게 됩니다, 가사도우미의 아들이라며 그를 여전히 탐탁치 않게 보는 할머니 가니마와 주변 사람들, 자신이 자라왔던 카톨릭 국가 필리핀과는 전혀 다른 이슬람 국가 쿠웨이트의 환경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겪게되는 다양한 사건을 호세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이 소설은 그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쿠웨이트 사회의 여러 이면을 다뤄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논란과 함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남자 주인공 호세 멘도자/이사 알타르루프역에 필리핀 남자 배우가 아닌 한국보다 아랍에서 더 유명한 한국인 코미디언 정원호가 캐스팅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이나 시리아인이 주연을 맡는 경우도 드물다는 걸프지역에서 제작한 TV드라마에 한국인이 주연을 맡는 건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자 첫 사건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국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국인이 주연을 맡았고, 그런데다 하필 연기 경험이라곤 두 편 정도의 아랍 영화에서 특별출연 형식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일 뿐 드라마에 한 번도 출연해 본 적이 없는 그가 30부작 TV드라마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에 캐스팅 되었기 때문입니다. ([연예] 아랍의 한국인 코미디언 정원호, 이집트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한국인이 되다! / [영화] 어리버리한 세 아랍청년들의 코믹 로드무비, 아부다비에서 베이루트까지 (From A to B) 참조)


걸프지역에서도 10~20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한류 스타들과 달리 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셀러브리티로 아랍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그가 논란 속에 주인공을 맡은 이유는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성장배경 때문입니다. 그 역시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전형적인 한국 남성의 외모와도 살짝 다르고, 무엇보다 사우디에서 태어나 요르단에서 교육받고 UAE에서 연예계에 입문하면서 아랍어를 네이티브로 구사하면서 활동해 온 점이 제작진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캐스팅이었다고 합니다. (사우디에서 태어났기에 미국 등과 달리 국적이 주어지지 않아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한국인입니다만... [인물] 아랍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코미디언 정원호 참조) 드라마 제작진의 80%가 영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촬영기간 내내 함께 해야할 남자 주인공에게 별도의 통역을 추가로 붙일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죠. (참고로 남자 주인공의 대사 중 80%는 아랍어, 20%는 필리핀의 국어인 따갈로여서 따갈로를 따로 배워야 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화제와 논란 속에 라마단 특집 드라마로 편성된 사끄 알밤부는 쿠웨이트 사회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임에도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쿠웨이트에서 촬영허가를 받지 못해 촬영일정이 지연되면서 올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예정이었던 드라마는 4월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어 두 달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두바이와 필리핀을 오가며 촬영하는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방송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하루에 15~20씬씩 촬영하다가 막판엔 72시간 연속 촬영에 하루 35씬을 촬영하는 강행군을 거쳤다는군요.    



라마단 특집 드라마라 방송일정을 도저히 연기할 수 없는 제한된 일정에 쫓겨 제작된 한계가 있는 탓인지 드라마 자체는 유명한 원작의 후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채 대박도 쪽박도 아닌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논란 끝에 첫 정극 드라마의 주연을 맡은 정원호의 연기는 첫 주연임에도 잘 소화했다는 호평과 단순한 표정 연기로는 30부작 드라마를 이끌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평을 동시에 받은채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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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ubai-based Korean comic Wonho Chung is breaking the bamboo ceiling with role in Saq Al Bamboo (The National)

       Wonho Chung talks challenges of ‘Saq Al Bamboo’ (Gulf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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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 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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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