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 (Barakah meets Barakah/ Barakah yoqabil Barakah, 2015)
제작: 마흐무드 삽바그
감독: 마흐무드 삽바그
스토리/극본: 마흐무드 삽바그
출연: 히샴 파끼흐 (바라카 역), 파티마 알바나위 (비비/바라카 역), 림 하비브 (마담 마이야다 역) 외...
언어: 아랍어
국가: 사우디 아라비아
1. 줄거리
젯다 시내를 누비며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영업이나 행위를 단속하고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연극에도 참여하고 있는 젯다의 한 발라디야 (우리로 따지면 구청) 공무원인 바라카가 우연히 불법촬영 중이라는 신고를 받고 단속하러 나간 현장에서 촬영 중이던 인스타그램 셀레브리티 비비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2. 사우디의 영화
전세계에서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나라로 유명한 사우디는 또 하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관입니다. 동부지역에 아이맥스돔 상영관이 있지만, 이 아이맥스돔 상영관에 걸리는 상영작은 자연 다큐멘터리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여성운전과 달리 영화관은 원래 사우디에 있었다가 폐쇄된 것이 큰 차이점입니다.
이는 이란에서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 (1978년 2월~1979년 4월)이 일어나 샤 왕조를 몰아내고 이슬람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고, 사우디는 왕국 건국의 일등 건국공신들이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들었다가 국부 이븐 사우드에 의해 궤멸된 이슬람 원리주의 민병대 조직 이크완 ([역사] 사우디 통일전쟁과 건국의 또다른 주인공, 베두윈들의 종교적 민병대 이크완)의 후손 주하이만 알오타이비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에 의해 2주간 (1979년 11월 20일~12월 4일) 성지인 메카의 그랜드 모스크가 점거당하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은 후 국가 기조를 강경 보수성향으로 틀어버리는 과정에서 영화관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네... 60~70년대의 사우디 분위기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온건한 분위기였었다고 하네요.
그렇다고해서 영화를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기에 영화를 집에서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았지만, 아이맥스 상영관, 4DX관 등의 특별관이 생기게 되면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정에 이를 구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많은 사우디 영화팬들은 영화관에서의 관람을 위해 인근 이집트나 UAE 등으로 해외 원정 관람을 나가게 되면서 ([문화] 영화관람을 위한 탈출: 사우디의 영화관 금지가 이웃국가의 관광사업에 미치는 영향) 영화, 관광업계에서는 사우디 정부측에 금지된 영화관 사업을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해 왔습니다. 국내에서도 쓸 수 있는 돈을 굳이 영화를 보러 해외에서 쓰도록 방치해두겠냐는 명분을 들먹이면서 말이죠.
해외 유학을 통해 해외물을 먹은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위성과 인터넷 등을 통해 정부가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는 매체들이 발달하여 영화관 재개를 요청하는 국내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강경했던 분위기도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영화관 없는 사우디, 드디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을 허용하나?!) 올해 4월 현 사우디 살만 왕권의 넘버쓰리지만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자가 발표한 사우디 비전 2030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층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지금까지 엄격하게 규제해왔던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발전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공식적으로 없어진지 근 40여년만에 사우디에도 영화관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때보다 커진 상황입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새로 건설 중인 쇼핑몰들의 경우엔 멀티플렉스 입점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하죠.
종교경찰 등의 개입으로 촬영여건도 좋지 않지만, 힘들게 만들어도 정작 자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극장이 없기에 다큐멘터리 영화 등은 간간히 제작되어도 정작 극영화를 보기 힘들었던 사우디에서 해외에 소개된 첫번째 영화 와즈다는 그야말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영화]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 용감한 소녀의 이야기, 와즈다 (Wadjda) 참조) 해외자본의 투자를 받기는 했지만, 여성 감독이 사우디 현지에서 100% 촬영한 자전거를 타고 싶은 소녀 와즈다의 이야기가 각종 국제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면서 사우디의 여성인권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었고, 결국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자전거 이용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으니 말이죠.
그리고 와즈다로부터 4년이 지난 2016년, 사우디에서 만든 두번째 극영화가 지난 2월에 열린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소개되었습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상영된 첫번째 사우디 영화.
그런데.... 응???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구요???? 그것도 100% 사우디에서 촬영한????
3.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
영화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는 사우디 독립영화의 개척자로 꼽히는 마흐무드 삽바그 감독이 제작, 감독, 각본을 맡은 독립영화입니다. 사우디 젯다에서 태어난 그는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공부한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대학원 석사로 다큐멘터리와 웹드라마를 만들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제작비를 조달하여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를 통해 처음으로 장편 극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소심한 공무원으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바라카역을 맡은 히샴 파끼흐는 사우디 여성운전 금지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013년 10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한 편의 패러디 뮤직비디오 No Woman, No Drive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입니다. ([사회] 사우디 여성운전 금지를 비꼬아 4일만에 유튜브 500만뷰를 돌파한 화제의 노래, 노 우먼 노 드라이브 참조)
남자 바라카가 만나게 된 블로거 비비역을 맡은 여자 주인공이자 영화를 보면서 가끔씩 블랙 위도우, 아니 스칼렛 요한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파티마 알바나위는 하버드대에서 여성과 종교에 관한 주제로 석사를 받은 사회운동가로 배우로서는 첫 데뷔작입니다. 사실, 이 캐스팅에는 비화가 있는데.... 그녀는 제작자 겸 감독인 마흐무드 삽바그가 가족을 통해 알게된 지인으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하네요. 석사학위를 마쳤을 무렵 영화 출연을 제의했다고... 그만큼 젊은 여성 연기자 인력풀이 없을 사우디에서 큰 부담없이 캐스팅할 수 있었을 듯.
"(남자) 바라카가 (여자) 바라카를 만나다"라는 제목에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는데,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자 아랍어로 축복, 알라의 은총이라는 뜻을 지닌 바라카 (بركة)는 사실 여성들에게 붙이는 이름이라는 점입니다. 1 (이름 덕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만...)더불어 두 주인공의 현실은 이름의 의미와는 달리 그리 축복받은 상황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의미도 담겨있기도 하구요.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관중들을 웃겼다는 말이 허세는 아니었는지, 영화는 안 어울릴 것만 같은 두 사람의 케미와 남자 주인공 바라카 주변 친척들이 치고받는 대사는 관객들을 시종일관 웃겼습니다. 특히 아랍어의 뉘앙스를 알고 그 문화를 잘 이해하는 이들에겐 곳곳에 빵빵 터질 빅재미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더군요.
하지만,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해 보려는 두 커플들 앞에 놓인 현실은 오늘날 답답한 사우디 사회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함께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공공장소는 거의 없고, 악명높은 종교경찰들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음에도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항상 주변을 의식하면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이죠. 감독은 종교 경찰들이 사우디 사회 내에 빅브라더처럼 존재하며,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의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데이트를 방해하는 존재로 종교 경찰을 등장시키지는 않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검열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는 자막이 영화시작 전 등장하지만, 영화 내에는 모자이크 된 부분과 무음처리한 대사를 드러내며 감독의 의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한 현실은 데이트 한번 하기 힘든 갑갑한 현실이 사우디 사회에서 오래전부터 계속 이어져 온 것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역사적 이벤트로 급진적으로 돌변했다는 점을 직접 언급합니다. 삼촌의 젊은 시절 회상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결혼할 때만 해도 현재 고민하는 어려움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공공장소에서 연애할 수 있었다는 점을 말이죠.
사우디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높아져가는 이혼률 (시간당 5~8부부)의 이유로 신혼부부와 SNS를 빌미로 파혼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공장소에서의 데이트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어 서로를 대면하면서 알아나가는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과 이러한 제도상의 헛점을 파고들어 사교의 공간으로 자리잡은 SNS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죠.
첫번째 사우디 장편 극영화 와즈다의 무대가 수도 리야드였다면,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의 무대는 사우디의 두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개방적인 도시 젯다로 남자 주인공 바라카가 근무하는 지역은 젯다항을 낀 젯다시 남부의 구시가인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니깝은 커녕 히잡도 거의 착용하지 않고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담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리야드보다 상대적으로 가장 개방된 젯다가 촬영하기에도 한결 수월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프라이빗한 데이트 장소를 찾는데도 유리하다는 점은 덤.
4. 마치며...
온건했다가 강경보수적으로 급선회한 사우디의 현실 속에서 연애해보려는 두 커플의 로코물인 바라카가 바라카를 만나다는 역으로 이러한 주제를 대놓고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 또다른 사우디 사회의 변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대대적인 사우디 사회의 변화를 겪어보지 않고 다양한 문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사우디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해 나가야만 하고, 비전 2030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마흐무드 삽바그 감독 (1983년생)이나 남녀 주인공인 히샴 파끼흐 (1987년생)와 파티마 알바나위 모두 사우디 출신이지만 생활무대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활동 중인 신세대들이기도 하구요.
(왼쪽부터 남자 주인공 히샴 파끼흐, 여자 주인공 파티마 알바나위, 그리고 감독 마흐무드 삽바그)
최근 사우디 당국은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에큐매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영화를 와즈다에 이어 내년도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부문 후보에 사우디 대표로 출품시켰습니다.
- 무슬림들의 이름은 대개가 남성용, 여성용 이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간혹 같이 쓸 수 있는 이름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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