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에서 보다 많은 소비가 이뤄지는 라마단 기간을 그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는 영국 업체가 있습니다. 1세기도 훨씬 전인 1908년 영국 북부의 산업도시인 맨체스터에서 설립된 영국의 음료업체 니콜스PLC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니콜스가 이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국의 음료업체이면서도 그 누구보다 라마단을 기다리는 이유는 회사의 대표 상품인 빔토 (VIMTO)가 이슬람 지역, 특히 아라비아 반도에서 회사의 한해 매출량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소비국인 사우디를 중심으로, 쿠웨이트, UAE로 이어지는 아라비아 반도는 지난해에만 9%의 판매신장률을 기록했을 정도로 영국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빔토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장인데다 중동지역의 판매량이 니콜스사의 매출 상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서 연간 3500만병 이상으로 추정되는 판매량 중 절반 이상이 라마단 단 한 달만에 판매가 되다보니, 빔토가 가장 적극적으로 프로모션에 들어가는 달이기도 합니다. 본사가 있는 자국에서도 설탕세를 도입하려는 상황에서 최대 시장인 아라비아 반도만큼 중요한 시장이 없는 셈이니까요. 올해의 라마단에는 세계적인 크리스탈 제품 제조 및 판매처로 유명한 스와로브스키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자신의 이름을 크리스탈로 수놓은 개인 전용 빔토병을 출시했을 정도라는군요. 1 2
빔토가 한 외국 음료회사의 매출량을 좌우할 정도로 아라비안 반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라마단 기간 중 하루의 첫 식사인 이프타르와 단식 전 마지막 식사인 수후르에 반드시 마셔야만 하는 머스트 드링킹 음료로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오래된 9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라비아 반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프타르 테이블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왕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으며, 많은 아랍인들의 라마단 기억속에는 빠지지 않을 정도로 이프타르는 곧 빔토를 의미한다고 하죠.
빔토는 영국이 절주 운동에 한창이던 1908년 약사인 존 노엘 니콜스에 의해 "정력과 활력(vim and vigour)"을 약속하는 허브 강장제 (Herbal Tonic)로 개발되어 "정력강장제 (Vimtonic)"란 이름으로 처음 출시되었다가 "빔토닉"이란 이름을 줄인 "빔토"가 다양한 파생상품이 개발되며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태어난 음료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약품으로 등록되었다가 (1912년), 이듬해에는 음료수로, 6년 뒤인 1919년에는 "미네랄 및 스파클링 워터"로도 등록되면서 의약품의 성격을 버리고 본격 음료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3
핏빛이 연상되는 진한 자줏빛 시럽형 농축음료수 빔토가 아라비안 반도에서 소개가 된 계기는 인도인들 때문입니다.
영국 본토에서 음료수로 자리잡은 빔토의 첫 해외시장은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였습니다. 1920년경 창업주 존 니콜스의 지인을 통해 인도에 거주하는 영국군들에게 "고향의 맛"임을 어필하며 소개되었고, 1924년에는 본격적으로 인도에도 상표권을 등록하면서 인도와 그 주변지역 국가에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인도인 직원들을 통해 빔토를 소개받은 사우디의 한 가족회사인 압둘라 아우잔과 형제들 (Abdullah Aujan & Brothers)이 대박을 예감하고 자신들이 유통해주겠다며 오늘날의 사우디가 건국되기 이전인 1928년 니콜스사로부터 사우디로 대량 발주를 넣은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빔토 시대의 시작이었습니다.
빔토의 유통을 자청한 압둘라 아우잔과 형제들은 자신들의 판매망을 풀가동하여 불과 몇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30년대 초반에 신생 국가인 사우디와 별도의 나라없이 영국과의 협정 국가였던 토후국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던 아라비안 반도 전역에 빔토를 소개하며 아랍인들의 입맛을 길들이는데 성공하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이후 이들은 유통에만 만족하지 않고 1970년대부터 니콜스사로부터 라이센스를 받아 담맘에 있는 공장에서 제품을 직접 생산하여 아랍지역 전역으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UAE에서도 사우디에서 생산한 빔토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죠.) 빔토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 이들의 생산능력을 인정한 코카콜라에서 2014년 지분을 일부 인수하면서 아우잔 코카콜라 음료회사 (Aujan Coca-Cola Beverages Company (ACCBC))로 사명을 변경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빔토의 선풍적인 인기는 아랍어에 없는 v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다른 언어에서 차용한 (ڤي) 글자를 끌어들여 공식 제품명을 표기 (ڤيمتو)할 정도이며, 니콜스의 창업주 존 니콜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빔토는 영국에서보다 더 많이 알려진 중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회술할 정도였습니다. 영국 언론이 이례적으로 라마단 기간 중 매년 이어지는 빔토 열풍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4
빔토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절주운동 분위기 속에서 술 대신 마실 수 있는 강장음료로 개발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 외에도 달달한 맛을 선호하는 아랍인들의 입맛에 맞춰 영국에서 판매하는 오리지날 빔토 대비 당도를 두배로 농축시킨 변형된 레시피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당도를 두 배로 농축시킨 농축액이기에 그냥 원액 그대로 마시면 그야말로 걸죽한 설탕물 시럽을 들이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최적의 음용방법은 물과 섞어 희석하여 마시는 것입니다. 병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물 500ml에 빔토 100ml를 섞어 마실 것을 권장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술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 음료수이면서 물과 함께 섞어 마시면 걸쭉한 시럽이 희석되어 탄산음료나 스파클링 워터를 마실 때 받는 강렬한 자극없이 공복에도 부담없이 마시면서도 농축된 당분을 통해 하루 종일 단식으로 혈당이 떨어진 몸에 단시간에 당분을 공급해줄 수 있기에 이프타르에서 빠질 수 없는 음료가 된 것이고, 단식에 앞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수후르 때도 하루종일의 단식에 대비한 당을 비축하기에도 효과적이기에 빔토는 라마단을 준비하는 아랍인들에게 빔토 홀릭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머스트 드링킹 음료가 된 셈입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빔토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해 1인당 판매량을 두 병으로 제한한다는 경고문이 붙어있을 정도라면 말 다했죠.
아라비아 반도에서 차지하는 빔토의 의미는 6월 5일자 The National지에 소개된 기사의 제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에, 이 지역은 빔토를 발견했다."
참고로, 석유는 빔토가 1930년대 초반 아라비안 반도에 사는 주민들의 입맛을 중독시킨 뒤인 1938년경 사우디 동부지역에서 첫 상업용 석유채굴에 성공하였지만, 상업화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1939년 5월 1일이 되어서야 석유를 처음으로 해외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 사우디의 운명을 바꾼 75년전 오늘, 1939년 5월 1일 참조)
출처: Vimto (Wikipedia)
Before there was oil, this region discovered Vimto (The National)
Why do Vimto sales see a huge spike during Ramadan? (The Telegraph)
Vimto sales set to surge as Ramadan begins (The Guardian)
- Vimto sales set to surge as Ramadan begins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6/jun/06/vimto-sales-set-to-surge-middle-east-as-ramadan-begins) [본문으로]
- Before there was oil, this region discovered Vimto (http://www.thenational.ae/opinion/comment/before-there-was-oil-this-region-discovered-vimto) [본문으로]
- History of Vimto (http://www.vimto.co.uk/history.aspx) [본문으로]
- Vimto hits purple patch in the Gulf (http://www.bbc.com/news/business-2345561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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