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동지역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IP TV나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매체가 활성화되고 도시 미관을 위해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 설치를 금지시키는 등 위성방송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중동지역 방송시장의 중심이었던 위성방송 시장에서 한국 방송이라곤 KBS World, 아리랑 TV, YTN 등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지역에서 방송을 송출하는 위성 때문에 YTN까지 보려면 위성 안테나를 하나 더 설치해야만 했었죠.
(눈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서면 예멘과의 국경이 있다.)
비공식적인 채널로 2천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유료방송을 송출했던 채널 썬은 한국에서 녹화 테이프를 공수받아 방송하다보니 하루 늦은 전날 9시 뉴스를 틀어주곤 했는데,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결항이 될 경우 뉴스를 방송하지 못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6개월 전 드라마를 틀어주다 한국과의 방송시기를 2~3개월로 바짝 줄인 최신 드라마를 방영하는 기념으로 1주 내내 시간대를 옮겨가며 재방에 삼방까지 했었던 가을 동화를 사우디와 예멘의 인근 국경지역 현장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채널 썬을 통해 한국 방송을 접했던 사우디 지잔 현장 숙소. 떠난지 6년 후 다시 찾았을 때는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이런 방송 현실에서 한국 문화를 접한다는건 현지 방송에서 판권을 사서 방송하지 않는 한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방송된 겨울연가, 대장금, 허준 등이 높은 인기 속에 방송되었다고는 하지만요.
하지만 이쪽 지역에도 인터넷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K-Pop, 한국 드라마 등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2천년대 후반 이후 중동지역에도 한류 열풍이 미약하나마 불기 시작하면서 초창기 아랍지역의 한류 발원지인 이집트, 요르단 등에 이어 걸프 지역에도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카타르 QNCC에서 2013년 3월 11일 열렸던 한국 영화의 밤 행사를 찾은 송중기를 보기 위해 모인 현지팬들이 주최측의 예상보다 많이 몰려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릴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관심과 인기는 아랍어 더빙으로 방송하는 드라마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아직까지는 실제로 중동지역을 찾은 한류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음에도 일찌감치 자생한 아랍지역 슈퍼주니어 팬클럽인 아랍 엘프 (Arab Elf)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지에선 BTS란 약칭으로 더 유명한 방탄소년단의 아랍 팬클럽인 아랍 아미 (Arab Armys) 처럼 한국에서보다 이 곳에서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이 생기기에 이르렀으니까요. (이들 모두 지난달 아부다비에서 열린 KCON으로 그동안 쏟아왔던 애정에 대한 보답을 얻었겠습니다만...)
이들이 보이는 관심이 낯선 한국에서 이를 가장 실감해 온 곳은 바로 KBS World 라디오 아랍어 방송입니다. 새로운 문화에 민감한 10~20대 걸프지역 소녀들에게까지 확산된 한류의 영향은 직접적인 팬심을 표현하는 것은 물론 그 전엔 상대적으로 멀고 낯설어 관광지로서는 매력이 없었던 한국을 방문하는 걸프지역 관광객들이 늘어나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문화] 사우디에서 려욱에게 도시락을??? 걸프지역 소녀들에게 미치는 한류의 힘! 참조)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에도 한국문화원이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10월 29일 이집트 카이로 독끼 지역에 아랍권 최초이자 북아프리카 지역 최초의 한국문화원인 이집트 한국문화원이 개원했고, 지난달 3월 10일에는 UAE 아부다비 칼리파 파크 근처에 중동 지역 최초의 한국문화원이 개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세계 25개국에 개원한 한국문화원 중 29번째 문화원으로 말이죠.
(현재까지 개원한 전세계 25개국 29개의 한국문화원 위치)
UAE 한국문화원이 있는 twofour54 캠퍼스는 우리에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의 설계자로 유명한 고 자하 하디드가 세상에 남긴 작품 중 하나인 칼리파 대교 근처에 있습니다. 아부다비에서 나갈 땐 칼리파 대교에 들어서기 전, 아부다비로 들어갈 땐 칼리파 대교를 지나자마자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죠.
(우측 상단에 보이는 보이는 건물단지가 twofour54캠퍼스)
개인적으로는 이 곳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근무일인 일-목까지만 열고 주말인 금토에는 문을 열지 않으니까요.
UAE 한국문화원 운영 시간
일-목: 오전 9시~오후 6시 (도서관: 오전 10시~오후 8시)
금-토: 휴원
전화: +971-2-491-7227
공식 홈페이지: http://uae.korean-culture.org/ko/welcome
하지만, 목요일에 방문할 기회가 생겨 개원한지 한 달여가 지나고서야 처음 방문해 볼 수 있었습니다.
UAE 한국문화원은 6층짜리 건물 중 1층과 2층의 두개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다른 층에 입주하는 사무실 때문에 공사가 진행 중으로 작업하는 인부들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붙은 한국문화원을 알리는 표식은 떨어졌거나 간신히 붙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탔던 엘리베이터에는 1층을 알리는 표식이 떨어져 있어서 한국문화원이 2층에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3~6층에 모든 사무실에 입주가 끝나면 제대로 붙어있을 수 있겠죠..
- 1층 -
문화원의 입구는 한국문화원임을 상징하듯 일반 자동문임에도 전통 한옥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쇄지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내 데스크 및 대기, 휴식 공간 등이 있습니다.
이 대기 공간에도 기술을 활용한 간단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볼 수 있게끔 체험해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고... (반대로 아랍 문화권에서 한국에 올 때는 손으로 직접 쓴 아랍어 캘러그래피로 이름을 보여주곤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죠...)
고려청자를 3D 이미지로 액자에 담아 보여주기도 합니다.
리셉션을 지난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공간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인 사랑채입니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이었던 사랑채 (방)은 아랍의 문화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아랍의 주택 구조에서도 외부 손님과 가족들의 접촉을 가능한 차단하기 위해 문에서 가장 가까운 방, 혹은 별채를 손님접대용 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대충 둘러보느라 못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손님들을 위한 공간을 따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양 문화의 유사점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좀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사랑채 공간을 지나면 한복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번거롭게 갈아입지 않아도 이미지 합성을 통해 한복을 가상으로 입어볼 수도 있고...
정말 입어보고 싶으면 진짜 한복을 입어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지나면 한류로 대표되는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ICT홀이 손님들을 기다립니다.
한국드라마 DVD 등이 전시되어 있는 미디어 라이브러리.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스타 레코딩과 VR 익스피리언스룸이 있습니다.
스타 레코딩은 K-POP 가수의 노래를 선택하여 직접 노래도 따라부르고 같이 레코딩하는 듯한 합성 이미지 등을 만들 수 있는 곳인데 몇가지 단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첫째, 아직까지는 등록되어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가 적고, 둘째, 볼륨이 낮게 설정되어 있어 따라 불러도 왠지 밍숭맹숭한 기분이 드는데다, 셋째 프로그램의 오류가 눈에 띕니다. 테스트삼아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선택해 봤는데, 박미경이 시스루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이 어떤 이들에겐 거부감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박미경을 알만한 아랍애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 불행 중 다행이긴 했습니다만...
VR 익스피리언스는 삼성의 최신 휴대폰인 갤럭시 S7과 함께 대형 매장에서도 체험해 볼 수 있어서 체험은 생략...
가장 안쪽엔 다양한 미디어 작품 등이 상영되는 전시 스크린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스타 윈도우라는 체험코너가 있어 뭔가 했더니....
원하는 스타를 선택하면 스크린으로 튀어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곳이었네요.
스타 윈도우에서 본 ICT홀의 풍경.
그 외에도 한국의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만화와 게임을 소개하는 코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ICT홀 끝 깊숙한 곳에서 빛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전시공간 겸 행사무대인 아리랑홀이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땐 특별한 행사가 없어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작품 뒤 벽은 펼칠 수 있게 되어 있어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는 벽을 열어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가변벽 반대편 진열대에는 중소기엄 등의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리랑홀을 지나면 한식 요리교실이 열리는 강의장이 있는 수라간이 있습니다.
한식 요리교실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담긴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당신이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한식 요리법을 배워보자!"
이는 한국 드라마의 확산과 함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한국음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현지인들을 노린 문구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요리교실이 없었을 때에도 동영상 등을 통해 독학으로 만들어 보는 아랍인들도 있으니까요.
UAE의 변두리 지역인 라스 알카이마에 문을 연 한국 슈퍼마켓에까지 호기심에서든, 구매하기 위해서든 찾아온 UAE인들을 보다보면 상당히 많은 곳에 한국 음식이 소개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라스알카이마] 한국식당에 이어 한식 식재료를 파는 슈퍼마켓이 들어서다! 참조)
벽 한켠에 마련된 전시대에는 식기를 보여주거나...
한식 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 종교단체를 통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할랄 인증을 받은 식품이라는게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성분에 따라서는 과자나 쥬스 등 간단한 식품에서부터 적용이 됩니다. 설령 수출을 하더라도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일반 진열대에서 팔 수 있는지, 비무슬림을 위한 한정된 공간에서만 팔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도 되니까요. 오래전부터 이 곳에서 팔리고 있는 신라면의 예를 들면 한국에서 파는 그대로의 신라면은 비무슬림을 위한 공간에서만 팔 수 있지만, 성분을 바꿔 할랄 인증을 받은 신라면은 일반 진열대에서 판매되는 것처럼 말이죠.
수라간까지 둘러보면 1층을 다 본 셈입니다. 그럼 윗층으로 고고!!!
- 2층 -
문화원 사무실을 제외한 2층은 도서관과 강의실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소개 책자가 눈에 띄고...
곡선으로 휘어진 서가와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있습니다.
강의실은 개원한지 한 달도 채 안되어 수강생이 100여명 정도에 달한다는 한국어 강좌가 열리는 곳입니다.
강의실 이름이 한국의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점이 눈에 띄네요.
문이 열려있던 겨울 강의실을 들어가보니 강의실 벽면에는 겨울 이미지와 함께 겨울밤이라는 시가 적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강의실 역시 어떤 구성일지 짐작되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강의실 중 가장 큰 강의실은 가장 안쪽에 자리잡은 봄 강의실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이들을 위해 편안한 자세로 안자 볼 수 있는 풍선식 좌석이 책상 옆에 있습니다.
장서를 늘려나가고 있는 서가에는 나름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생과 같은 웹툰 기반의 만화책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한 책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아랍어 교재도 눈에 띄고...
무슬림 방문객들을 위한 한국의 식당 가이드도 눈에 띕니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무슬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거의 없어 서울에서 아랍인 바이어들을 만났을 때 겪어야만 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저로서는 놀랄만한 변화이기도 합니다.
봄 강의실 옆 도서관 한 켠에도 휴식, 또는 강의실 밖에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담기엔 쉽지 않은 흰 벽에는 다양한 한국어 표현이 적혀 있습니다.
2층 도서관 맞은편엔 문화원 사무실이 있습니다. 사무실문은 한국적인 느낌을 살렸지만 일반관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무난한 인쇄지가 붙어있는 것이 달랐습니다. 당연히 사무실 방문은 생략....^^
시간이 맞지 않아 좀처럼 방문하기 쉽지 않은 UAE 한국문화원 방문을 마무리했습니다. 한국문화원은 태권도 교실, 한국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이벤트를 통해 UAE에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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