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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

[사회] 아즈만 라디오 방송 파문으로 본 이마라티 사회, 그리고 그 그림자

둘라 2018. 4. 1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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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알마즈루이가 초청받은 UAE 내각회의장 풍경)



4월 초 UAE 신문의 사회면을 일주일 가까이 장식했을 정도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아즈만 라디오 방송 설전 파문이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아침방송에서 자신의 어려운 사연을 이야기하던 청취자에게 프로그램 진행자가 그에게 거친 대응을 보이면서 설전을 벌이다 못해 조롱까지 했다는 것이 이마라티 커뮤니티 내에 공분으로 확산되어 급기야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는 이마라티 사회의 특징과, 화려함 속에 묻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를 고스란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파문은 지난 3월 29일 아즈만 라디오의 인기 아침 방송인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목요일" 프로그램에서 그 프로그램의 애청자이자 라스 알카이마에 사는 57세 이마라티인 알리 알마즈루이가 전화연결이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 알리 마즈루이의 관점에서 본 그림자,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기 힘든 저소득 이마라티의 고충

35세부터 10세 사이의 아들 셋, 딸 여섯의 아홉 자녀를 둔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몇 년전까지 환경부에서 운전사로 근무했지만 당뇨와 고혈압 등 건강 상의 문제로 퇴직한 후 더 이상의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국가로부터 받는 한 달에 13,000디르함 (약 390만원)의 연금이 유일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 얼핏 보면 많아보이는 액수이지만, 물가가 낮지 않은 UAE 내에서 그 정도의 연금 수입만으로는 10명이 넘는 대가족을 건사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들의 늘어만 가는 교육비도 교육비지만 대가족이 살기엔 좁게 느껴지는 집과 무엇보다 치솟는 물가는 그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 일단 집문제라도 해결하고 싶어 정부의 주택 프로그램도 신청했지만, 도통 차례가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애청자이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듣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면 좀더 프로세스가 빨리 진행될까 싶어 전화를 건 것 뿐이었는데.... 예전에도 전화연결이 되어 자신이 직접 지은 싯구도 읊어줬을 정도로 애정했던 진행자와 통화하는 와중에 그가 자신의 하소연에 생각지도 못한 날선 반응을 보이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우리에게 UAE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바이가 대표하는 럭셔리함일 것입니다. 미래도시 속 건물이라고 해도 통할 것 같은 높고 화려한 외관의 건물,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슈퍼카, 호랑이나 사자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부자 등...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UAE의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는 명목상 1인당 GDP의 두 배 가까이 높아 세계 톱 10에 들 정도니 말이죠. GCC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럽이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식적인 명목의) 세금이 거의 없다시피하기에 명목상 GDP와 구매력 기준 GDP의 차이가 상당히 큰 편입니다. 


우리나라와 GCC 국가들의 1인당 GDP (IMF 2017년 추산)

 

1인당 GDP (명목)

1인당 GDP (구매력 기준)

 대한민국

29,730 (26위)

39,887 (30위) 

 카타르

60,811 (6위)

124,927 (1위)

 UAE

37,346 (24위)

68,245 (8위)

 사우디아리비아

20,957 (35위) 

55,263 (12위)

 쿠웨이트

27,236 (30위) 

69,669 (7위)

 오만

 17,406 (42위)

45,464 (24위) 

 바레인

25,169 (31위) 

51,846 (5위) 

* 단위: US$


하지만, 구매력 기준 GDP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는 이마라티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소득 계층으로 이루어진 인구 1천만명을 바라보는 UAE 인구 중 순수 이마라티는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통계상으론 100만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100만명이 채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마라티와 외국인들간의 빈부격차도 존재하고, UAE의 일곱 토후국 내에도 빈부 격차가 있는 것처럼 각 토후국에 사는 이마라티들 간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합니다. ([영화] City of Life, 두바이에서 얽히고설킨 세 사람의 운명 참조) 아부다비와 두바이, 샤르자에 사는 이마라티들 간에도 빈부차가 있지만, 그 격차는 나머지 토후국 주민들로 갈수록 더 커지는 셈이죠. 유독 전쟁터나 화재 현장에서 죽는 라스 알카이마나 푸자이라 출신 이마라티가 유독 많은 것도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있습니다. 19세기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하려는 영국군에게 초토화 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해적질로 악명을 떨치던 선조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벌기 위해 거친 일이라도 정부의 직업 군인이나 소방대원을 택하는 현지인들이 많다는 얘기도 되니까요.


자국민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이마라티들 사이의 빈부 격차는 저유가 시대 이후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부 재정의 여파로 혜택이 축소되면서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이상으로 예멘 내전에 참전하는 군비 지출로도 많은 비용이 빠져나가고 있으니 말이죠. 각종 보조금은 줄어드는 대신에 수익확출을 위해 GCC 국가들 중 가장 비쌌던 휘발유 가격도 대폭 인상되었고, 각종 명목의 수수료 및 비용이 생겨나거나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2018년부터 공식적인 세금인 VAT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니 말이죠.


정부의 각종 비용 신설 및 인상으로 인한 여파는 UAE의 인플레이션율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칩니다. 



1990년부터 2018년 2월까지 UAE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은 2.19%로 비교적 안정적인 편입니다. 이는 정부가 유통업체들과 합의하여 기초 생필품 가격을 통제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결과이기도합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평균 인플레이션율을 상회하는 특정 기간들이 눈에 띄는데, 두바이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을 2008년 12월에는 28년 동안 최대치인 12.3%까지 치솟았고, 최근으로만 한정하면  정부가 2015년 8월 1일부터 변동 유가제를 적용하면서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졌다가 안정된 후 VAT가 부과된 2018년 1, 2월에는 4.5%, 4.8%로 평균 인상률의 두 배 이상 상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초 VAT가 부과되도 물가인상률은 안정될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 (이라 쓰고 믿음으로 읽는...)과 달리 시작 첫 달부터 평균의 두 배를 너머 5%에 육박하는 인상률을 기록하자 정부는 급기야 주요 생필품의 반값 할인에 나서는 등 물가를 잡기 위해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UAE 정부는 VAT 도입 검토 당시 식자재 등 주요 생필품은 면세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가 방침을 번복하여 기초 생필품에도 부가세를 부과하면서 물가인상률을 더욱 높여놓은 상황이었죠.


각종 비용부담과 치솟는 물가는 알리 마즈루이처럼 부유하지 않은 은퇴한 이마라티인들의 생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맞물려 이들이 정부차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만혼과 저출산 추세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합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허세와 높아지는 물가로 인한 비용 폭등으로 인해 결혼을 늦게 하거나,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다산이 기본이었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교육비 및 양육비에 부담을 느껴 자녀수도 급감하고 있거든요. 


(라스 알카이마 왕세자의 합동 결혼식장 풍경.)


최근 라스 알카이마 왕세자가 자신의 결혼식을 175쌍 합동 결혼식으로 치뤄 화제를 모았던 것처럼, 이마라티 사회 내에 합동 결혼식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나가는 것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볼 수 있겠습니다.



2. 방송 진행자의 관점에서 본 그림자, 공개적으로 국가에 대한 모독은 할 수 없어!

아즈만 라디오의 인기 방송 진행자인 야꿉 알아와디는 평소와 다름없이 자신과 연결된 청취자의 사연을 듣기 시작했는데, 사연을 듣다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안된 사연이긴 한데, 듣다보니 자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순전히 국가 탓으로만 돌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운건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기에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에도 뭔가 찜찜하고 말이죠. 청취자의 발언수위가 점점 쎄지는 걸 듣고 있자니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머릿 속이 복잡해지고 있는 가운데, 청취자의 한마디가 결국 불편하게 듣고 있던 진행자를 폭발시키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마라티들 중 절반, 그러니까 50만명 가량이 저처럼 물가인상 등을 감당하지 못해 빈곤하게 살고 있잖아요....!"


공개적인 라디오 생방송에서 국가에 대한 모독을 대놓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정줄을 놓고 거칠게 빈정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도 격해진 설전 속에 분위기를 가라앉혀 보려고 딴에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 조롱으로 받아들여졌을 정도면 진행자로서의 평정심을 잃은 것이었죠.


그의 반응은 온오프라인에 상관없이 UAE국가와 지도자들에 대해 폄훼하거나 대놓고 비난할 경우 명예훼손, 모독 등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UAE법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청취하는 인기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서 자신의 발언이 끼치는 영향력을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가뜩이나 녹방도 아닌 생방에서 청취자에게 잘못 동조하다 수위를 넘기면 공중파 인기 방송에서 국가를 모독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일부 발언을 인용하여 정부를 모독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으니 꼬투리 잡히기 딱 좋은 청취자의 발언 수위에 결국 정줄을 놓게 된 것이죠.


(파문의 두 주인공이었던 알리 알마즈루이와 야꿉 알아와디가 직접 만나 화해하고 있다.)



3. 씨족 사회에 바탕을 둔 왕정국가다운 파문 해결

앞서 설명했듯 각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지만 청취자인 알리 알마즈루이의 말에 더욱 공감한 시청자들은 SNS 등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으며, 이 파문은 결국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의 공분이 나날이 커져가자 문제의 방송으로부터 4일 뒤인 4월 2일 아즈만 라디오 방송국이 있는 아즈만 왕세자 셰이크 암마드 빈 후마이드 알누아이미가 공분을 산 진행자 아꿉 알아와디를 방송국에서 퇴출시킬 것을 명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는 UAE 부통령이자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막툼이 이 파문에 개입해버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셰이크 무함마드는 정부 관련 부처에 알리 알마즈루이와 그의 가족이 안정된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요구사항을 24시간 내에 들어줄 것을 명하고, 헷사 빈트 이사 부 후마이드 커뮤니티 개발부 장관에게는 저소득층 이마라티인 지원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상세한 레포트를 긴급히 준비하여 다음주 일요일에 열릴 내각 회의에서 프리젠테이션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셰이크 무함마드는 파문의 주인공이었던 알리 알마즈루이를 직접 내각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초청하여 정부가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을 함께 보고 그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그리고 내각회의가 끝난 후 UAE 정부는 저소득층 이마라티를 지원하기 위해 3년 동안 110억디르함의 사회원조자금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합니다. 셰이크 무함마드로부터 두바이에 집을 제공받은 알리 알마즈루이는 단순히 내각 회의에 초대받은 것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개발부의 사회 연구원으로 특채되면서 자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일단 벗어나는데 성공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파문이 해결된 후 셰이크 무함마드는 자신의 트윗 계정으로 이 소식을 전하며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국가는 국민이 어려움을 겪을 때 움직인다. 그것이 (국부) 자이드가 원한 것이다." 


이는 씨족의 어르신이 집안 내, 혹은 자신이 거느리는 씨족 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즐리스에서 직접 만나 어려움을 듣고 그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거나 해결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UAE 같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국민들과 소통하는 원칙이자 통치 방식이기도 합니다.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정부를 깔 수는 없지만, 이마라티들이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어찌보면 이런 연유에 기인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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