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된 가방으로 인한 멘붕의 여파가 남아있던 이틀째 아침.
마침 쉬는 날이어서 같이 다니기로 한 지인이 오기를 기다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습니다. 이번 여행기간에 예약했던 호텔 중 유일하게 조식이 제공되는 곳이었고, 전날 밤 픽업하던 중 체크인하면서 함께 있었던 터라 둘이 먹어도 추가요금을 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일단 지인의 전화기로 공항에 전화를 걸어 가방이 과연 다음 비행기로 도착했는지 확인해 봅니다. 둘라의 핸드폰은 UAE에서 충전했던 전화요금을 이미 카타르에서 로밍으로 다 소진해 버린데다 전날 밤 공항에서 오지 않은 가방에 멘붕이 왔던 터라 바레인 선불 심카드를 살 정신조차 없었던 터라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배터리로 와이파이 잡히는 곳에서 인터넷 접속용 외에는 쓸모가 없던... (그렇다고 한국 핸드폰으로 로밍 통화를 감수하기엔 로밍요금이 턱없이 비싸;;;;;;)
그러나... 공항에서 온 답변은 더더욱 당혹스러웠습니다.
"네 가방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저녁 6시 이후로 다시 전화해봐라. 혹시라도 가방이 도착하면 핸드폰 문자로 알려줄께."
뭐... 간신히 멘붕에서 벗어났던 정신은 다시 안드로메다로;;;;;;;;; 이건 무슨 황당함과 함께 여행을 시작하는 꽃보다 청춘도 아니고;;;;
어차피 정줄 놓자니 너무 허무한데다 할 일도 없기도 했지만 지인 덕에 멘붕된 정신을 수습해서 오늘 하루 다닐 곳을 골랐습니다. 공교롭게도 지인이 바레인 생활을 시작한지 딱 한달째 되는 날 제가 왔던 터라 지인도 근처의 몇몇 장소 외엔 크게 추천을 해주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지인이 가지고 온 관광안내 책자에서 흥미가 가는 몇 군데 장소를 골라 동선을 정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바레인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저녁에 마나마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일정으로 말이죠.
그래서 가기로 결정한 곳은 마나마 구시가 무하르라끄에 있는 셰이크 이사 하우스, 바레인섬 중앙에 위치한 생명의 나무, 그리고 동부에 위치한 가장 큰 요새인 바레인 요새 순으로 말이죠.
어차피 지인도 저도 길을 잘 모르기에 차량 렌트는 포기하고 그냥 기사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4. 셰이크 이사 하우스
1) 셰이크 이사 하우스로 가는 길, 그리고 셰이크 이사 하우스는?
호텔을 나와 차를 탄 후 기사가 저희를 내려준 곳은 셰이크 이사 하우스 인근이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라고는 하지만 딱히 주차할 곳이 있지도 않고, 차는 그 앞까지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진입로가 넓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포장공사 중이었거든요....
세월의 흔적인듯 바랜 흰색의 전통 가옥구조를 가진 이 곳의 입구는 단촐했습니다. 입장료는 1인당 2디나르.
매표소 옆에는 이 집의 역사와 구조를 간단히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마나마 구시가 무하르라끄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집은 1800년에 셰이크 하산 빈 아흐메드 알 파티흐가 지어 그와 그의 후손들이 살았지만, 바레인을 1869년부터 1932년까지 무려 63년간 통치했던 셰이크 이사 빈 알리 알 칼리파 (1848~1932)가 생활하고 통치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셰이크 이사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바레인이 건국된 것은 그가 죽은 뒤인 1971년이지만, 바레인의 시작이라는 설명을 붙인 이유는 바레인 지역을 가장 오랫동안 통치했던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현재 바레인의 후계 구도가 그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레인은 1783년부터 지금까지 알 칼리파 씨족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셰이크 아흐메드 빈 무함마드 빈 칼리파가 바레인 알 칼리파 왕조를 시작했으며, 원래는 바레인과 함께 오늘날의 카타르를 병합하여 함께 통치해 왔지만, 이 지역에 자리잡았던 무함마드 빈 싸니가 이끄는 알 싸니 씨족의 반란이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결국 1868년 영국의 개입으로 인해 알 싸니 씨족에게 카타르를 잃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알 싸니 씨족은 지금의 국왕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 싸니에 이르기까지 카타르를 통치하게 되었으며, 바레인 입장에서 본다면 최근 불거진 카타르의 바레인 국민 귀화논란에 이르기까지 카타르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인 배경이기도 합니다.
2) 셰이크 이사 하우스의 이모저모
위에 있던 안내판에서 볼 수 있듯 이 집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뉩니다. 가족들을 위한 공간, 셰이크를 위한 공간, 하인들을 위한 공간, 그리고 손님들을 위한 공간.
하지만, 안내판 외에 건물 곳곳에 설명이 없는데다 안내판에 있는 지도와 명칭을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어 살펴보기가 조금은 불편했습니다. 단촐해보였던 입구와 달리 2개층으로 이뤄진 이 집은 나름 넓었습니다.
3) 걸프지역 천연 냉방장치 윈드 타워
이 집을 둘러보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소득은 천연 냉방장치 윈드 타워의 내부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6년 가까이 살았던 사우디에서는 본 기억이 거의 없는 윈드 타워를 처음 본 곳은 두바이의 바스타키야였습니다. 스타벅스가 팔고 있는 두바이 머그컵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하필 바스타키야를 방문했던 날이 주말이라 겉으로만 봤을 뿐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었거든요. ([두바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다가 유적지로 남은 바스타키야의 한적한 주말 풍경 참조)
안내문으로만 설명되어 있는 윈드 타워의 원리를 그림으로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윈드 타워라는 이름 그대로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한 건물의 냉방과 타워 내 공기의 순환을 통한 환기까지 별도의 동력원없이 타워 상부를 사방으로 뚫어놓은 건물구조와 바람의 힘으로만 건물을 난방시키는 천연 냉방장치입니다.
실제로 바람이 들어오는 타워 밑에 서 있으니 집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더위와 땀이 무색할 정도로 서늘한 것이 신기했습니다. 건물 내 다른 방에서는 후끈후끈 더웠는데, 이 타워 내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가만히 몇 분 서 있으니 송글송글 맺혔던 땀들도 가시고 나가기 싫을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으로 건물을 냉방시키는 윈드 타워. 날씨가 쌀쌀한 겨울이라던가 서늘한 밤에 별도의 스위치가 없는 이 타워의 기능을 어떻게 정지시킬까요? 답은 바로 여닫이 문에 있었습니다. 너무 춥다고 생각하면 천장에 달린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닫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이 두 개가 달려있기 때문에 1) 다 열기, 2) 하나만 열기, 3) 두 개 다 닫기의 3단계로 바람의 세기를 조절하게끔 말이죠.
셰이크 이사 하우스를 둘러보고 나니 이 근처에 관광책자에도 소개되었던 가볼만한 곳이 몇 군데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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