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사우디 국왕은 21일 새벽 발표한 칙령을 통해 왕위 승계 1순위인 왕세질 겸 내무부 장관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를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대신 자신의 아들이자 부왕세자 겸 국방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를 왕세자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의 조카인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 빈 나이프 왕자를 내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등 세대 교체를 겸한 부분 개각을 명령하는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기존의 왕위 계승 서열을 완전히 파괴한 칙령인 동시에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의 후임 왕세자와 신임 내무부 장관 모두 30대로 한때 노인정으로 불렸던 사우디 정부의 핵심 요직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것이 특징. 그래봐야 수다이리 세븐 라인이긴 하지만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는 아버지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왕자에 이어 사우디 역사상 유일하게 왕위를 눈앞에 둔 왕세제/질까지만 오르고 정작 왕위에 오르는데는 실패한 비운의 부자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 왕자는 친형 술탄 왕자와 함께 이복형인 압둘라 전 국왕보다 오래 살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반면, 아들인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는 한창 어린 조카에게 내쫓겼다는게 차이겠죠.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의 후임으로 내무부 장관이 된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 빈 나이프 왕자는 무함마드 왕세자보다 두 살 위이긴 하지만, 국부 압둘아지즈의 손자인 3세대 왕자가 아닌 나이프 빈 압둘아지즈의 손자, 즉 압둘아지즈의 증손자인 4세대 왕자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불과 몇 개월만에 살만 정부의 실세가 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비상
1985년 8월 31일 젯다에서 태어난 31세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대학 졸업 후 민간 분야의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아버지 살만 왕자가 술탄 전 왕세제의 뒤를 이어 국방부 장관, 그리고 왕세제에 오르는데 힘입어 개인 보좌역으로 아버지를 돕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도 연륜있는 사우드 왕가 내 친척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국왕 등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사이자 설계자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16시간을 일한다는 하드워커인데다 손자병법을 애독서로 꼽을 정도로 사우디 왕가에서 보기드문 근성을 가진 야심가이자 병서를 애독서로 꼽은 탓인지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전쟁도 불사하지 않는 매파.
위키피디아에서도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 6월 당시 사우드 왕가 내에서 소수파였던 압둘라 전 국왕이 자신의 친권 강화를 위해 우호세력을 살만 왕세제 및 수다이리 가문 영향 하에 있던 국방부 차관에 임명시켰다가 6개월만에 이를 철회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치] 압둘라 국왕, 칼리드 빈 반다르 국방차관을 지명 6주만에 전격 경질, 그리고 그 배경 참고) 이는 자신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 죽기 전에 자신의 우호세력을 요직에 심어놓아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자 했던 압둘라 국왕의 야심을 깬 사건이기도 했죠.
그리고 반년이 지난 2015년 1월 23일 압둘라 국왕 서거 당시 다음 왕위 자리를 놓고 겨뤘던 압둘라 국왕파와 살만 왕세제파의 권력투쟁 속에 신속한 대응으로 주도권을 장악하여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이 펼쳐지기도 전에 아버지 살만 왕세제의 국왕 승격과 압둘라 국왕 시절에 막후 실세로 불렸던 왕실법원장 칼리드 알투와이지리를 비롯한 압둘라 국왕파의 핵심 라인을 요직에서 다 쳐내면서 예의상 자리를 보전해 준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와 무타입 빈 압둘라 국가방위부 장관의 힘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 설계자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국왕이 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29세의 나이로 국방부 장관에 오르면서 세계 최연소 국방부 장관이 됩니다. ([정치] 살만 국왕의 신속한 체제 개편과 함께 재부상한 수다이리 7형제, 주목해야할 인물은? 참조) 그로부터 석달 뒤인 2015년 4월에는 그나마 자리에 남겨두었던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를 내치면서 이번에 물러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와 함께 부왕세제에 지명되며 고령화된 사우디 왕가에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정치] 살만 사우디 국왕, 쌍무함마드 체제로 전면 개편한 후계구도의 의의 참조)
살만 국왕시대의 핫한 블루칩임을 과시한 그의 부왕세제 지명은 아버지 살만 국왕을 만든 막후실세에서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군사와 경제를 손아귀에 쥔 정권의 진정한 실세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방부 장관 취임 두 달만에 인권 문제 및 저유가로 수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거액을 군비에 퍼붓느다는 등 많은 비판 속에서도 사우디 주도의 연합군을 이끌어내며 예멘 알후씨 반군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고, 이듬해인 2016년 4월에는 석유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사우디 아람코의 IPO 선언 및 주요 국영 시설의 민영화 등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 야심찬 Saudi Vision 2030을 직접 발표하는 등 경제 개혁을 이끌면서 동시에 인구 구조 상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높은 실업률 등으로 아버지 세대만큼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해 사회의 불안요소이기도 한 젊은층들을 달래기 위해 엔터테인먼트청 개설로 대표되는 사회 개혁을 이끄는 등 국내정치 개혁의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으며, 국외적으로는 서열 2위였던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 대신 해외 주요국 방문 및 정재계 인사들과의 회담,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서면서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해 왔습니다.
국부 압둘 아지즈의 아들들인 2세대 왕자들의 고령화와 너무나도 많은 왕자들 사이에서 권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수적인 정책을 취해 온 사우디 왕가를 감안했을 때 (아무리 아버지 빽이라고는 해도) 파격적이까지한 그의 행보는 요직에서의 경험부족으로 인해 연륜이 없는 새파란 젊은 왕자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적대적인 세력들이 함부로 준동하지 못하도록 군사력과 경제력을 손아귀에 넣으면서, 동시에 어느정도 경험과 연륜을 갖추었다는 명분을 쌓게 만들어 때가 되면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를 건너뛰어 왕위를 넘겨주겠다는 살만 국왕의 의지, 혹은 무함마드 왕자 자신의 미래설계가 반영된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소 언론 친화적으로 유명했다는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가 정작 왕세질이 된 이후엔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를 부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한편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주요국 국빈 방문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렸으니 말이죠.
마침내 서열 2위 왕세자에 오르다!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의 내무부가 독점하고 있던 검찰의 일부 권한을 독립기관이라는 명분 하에 국왕 직속 기관으로 개편하고 그의 라인들을 쳐내고 살만 국왕, 혹은 무함마드 부왕세자 라인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는 칙령을 내린 것이 불과 4일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한 초석 정도로만 여겨졌었는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의 왕세자 지명은 예상했던 일이면서도 갑작스런 지명에 대한 논란을 줄이려는 듯 지명 과정 자체는 모양새 좋게 진행되었습니다. 성스러운 달 라마단 중에서도 무슬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권능의 밤 중 하룻 밤 (히즈리력 9월 25일)을 잡아 승계 위원회를 소집해서 그의 왕세자 지명을 확정지었고, 그동안 수차례 왕세제/질 지명 과정에서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던 선례와 달리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그 결과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압둘라 국왕 시절 왕위 계승자 문제에 대한 논란을 일축시킨다는 명분으로 설립한 35인으로 구성된 승계 위원회 회원 34명 중 31명의 선택을 받았으며, 이는 승계 위원회 설립 이래 최다 찬성이라는 점을 덧붙이면서 말이죠. 여기에 살만 국왕이 국민들에게 충성서약할 것을 명령한 후 압둘라 국왕 시절 차세대 왕위 계승 후보 1순위에서 어느 순간 권력에서 물러나게 된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 역시 속은 어쨌든 순순히 충성서약까지 마쳤으니까요.
그런데... 왜 지금?
살만 국왕 즉위 후 지난 2년 반 동안의 행보로 볼 때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세질과 무함마드 빈 살만 부왕세자 사이의 후계 구도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우위에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카타르 단교 사태 등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뜬금없이 왜 하필 지금 발표를 했을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우디 역사상 최단기로 듣보잡 어린 왕자에서 왕위 계승 서열 1순위로 오른 그의 초특급 승진만큼이나 뜬금없을 정도로 급작스런 왕세자 지명은 오래전부터 알츠하이머 등 건강이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살만 사우디 국왕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람들로 왕권을 강화하고 아들에게 후사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늦은 80세의 나이에 국왕이 된 탓에 자신의 수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해 실패했던 압둘라 전 국왕으로부터 얻은 교훈이 있을테니까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왕세자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이 살만 국왕의 의지인지, 무함마드 왕세자가 대화할 여지가 없다며 적대시하고 있는 이란이나 반 사우디 왕가 언론들이 주장하는대로 무혈 쿠데타라고도 부르는 야심가 무함마드 왕자의 왕위 쟁탈 시나리오인지는 공식적으로는 알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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