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여행정보/호텔2021. 7. 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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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호텔체인 중 하나인 인터컨티넨탈은 그룹을 상징하는 UAE 시장에 일찍 뛰어들긴 했지만, 인터컨티넨탈 호텔보다 홀리데이인, 크라운 플라자 등의 브랜드를 주로 시장에 진출시켰습니다. 인터컨티넨탈 브랜드로는 1980년 아부다비에 인터컨티넨탈 아부다비를 개장하며 일찌감치 UAE에 진출했지만....

 

호텔업계의 경쟁지인 두바이에 첫 선을 보인 것은 2008년 페스티벌 시티에 인터컨티넨탈 두바이 페스티벌 시티를 개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곳에는 높거나 크지는 않지만 수영장의 일부가 건물 밖으로 돌출되어 물 속에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인피니티 글래스 풀을 선보여 화제를 모은바 있습니다. 인터컨티넨탈은 다른 토후국으로도 시선을 돌려 같은 해 6월에는 라스 알카이마에, 그리고 11월에는 푸자이라에 리조트 운영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2015년 5월에는 두바이 마리나 복판에 정면에서 보면 삼지창이 연상되는 인터컨티넨탈 두바이 마리나를 개장합니다.

 

그 후, 2017년 12월이 되어서야 인터컨티넨탈 브랜드로는 UAE 내 네번째이자, 첫번째 리조트인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가 알아까 비치에서 개장하게 되었습니다.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는 르 메르디앙 알아까 비치 리조트 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느덧 개장 3년 반을 맞이한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는 여전히 알아까 비치에 들어선 호텔 중 가장 최근에 문을 연 호텔로 개장할 무렵에 바람쐬러 드라이브하는 김에 로비까지만 잠시 구경하고 온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제서야 묵어 보았습니다. 

 

190실 규모의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는 건물 높이에서 볼 수 있듯 아담한 리조트로 정문을 들어서면 그다지 크지 않은 로비를 만나게 됩니다.

 

체크인 카운터는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막툼 두바이 통치자 겸 UAE 부통령,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흐얀 아부다비 통치자 겸 UAE 대통령과 함께 셰이크 하마드 빈 무함마드 알샤르끼 푸자이라 통치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1952년 일곱번째 토후국으로써의 푸자이라 독립을 영국으로부터 인정받은 후 UAE에 가입한 아버지 알샤르끼 씨족의 3대 통치자 셰이크 무함마드 빈 하마드 알샤르끼가 사망한 1974년부터 지금까지 푸자이라를 통치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UAE 내 일곱 토후국 통치자 중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에 이어 두번째로 긴 시간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가봅니다. 

 

모든 객실은 한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바다, 혹은 리조트 뷰입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봅니다.

 

 

제가 묵은 방 입구 왼편에 있는 두 개의 나무로 된 문 중 앞에 있는 것은 화장실 문.

 

 

 

 

 

최근에 문을 연 5성급 리조트 중에서는 비교적 넓은 방임에도 샤워실과 욕조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 크지는 않은 욕조에는 여닫이문이 달려 있어서...

 

객실과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라고 비워놨지만, 화장실 옆에는 미니바가 있습니다.

 

화장실과 미니바 맞은편에는 옷장과 수납장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지나면 객실이 나옵니다.

 

 

룸 컨트롤은 터치패드로 가능합니다.

 

특색있는 점은 침대 좌우의 협탁이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는 점. 서랍이 있는 협탁은 한쪽에만 있으며,

 

반대편에는 서랍 없이 선반에 올려놓을 수 있는 협탁 두 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침대 앞에는 TV와 TV 수납장, 그리고 원형 테이블이 놓여져 있습니다.

 

객실 TV에서는 한국방송은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TV 밑에는 협탁 위에 놓여진 것보다 좋은 BOSE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져 있습니다.

 

원형 테이블만 봐서는 전원을 연결하기 어렵겠다 싶겠지만, 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가 놓여진 공간 옆 벽에는...

 

튀어나온 부분을 살려 전원 및 미디어 허브가 세로로 매립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는 소파 베드가 놓여져 있습니다.

 

협탁의 비대칭적인 배치는 이 소파 베드를 감안한거 아닐까 싶네요. 

 

 

 

 

 

이제 방을 둘러봤으니 발코니로 나가봅니다.

 

긴 벤치와 의자가 들어가고도 남는 공간이 있지만, 생각외로 시야는 답답합니다.

 

하지만 발코니 끝으로 가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발코니의 조명은 벽 중간에 자리잡고 있고.

 

푸자이라는 다른 토후국과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기에 인도양을 배경으로 해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투숙 첫 날밤 퍼블릭 비치에서는 누군가가 예상치 못하게 펼친 불꽃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로비층으로 내려가 봅니다. 로비 왼편 안쪽에는 컨시어지 겸 비즈니스 센터가 있고. 

 

그 앞에는 로비 라운지인 호라이즌 라운지

 

 

그리고 호라이즌 라운지 & 바가 있습니다.

 

 

 

투숙 당시엔 유로 2020이 한창이어서 리조트 내에선 유일하게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누가 유로 2020 아니랄까바 플레이팅도....

 

그 외 편의시설은 그라운드층에 있습니다. 리조트 내 메인 레스토랑이자 삼시세끼 운영하는 글로벌 다이닝 마마가 있습니다.

 

 

 

 

 

 

 

야외석은 시샤 라운지를 겸하고 있죠.

 

건물 밖을 거닐어 봅니다.

 

조경으로 인해 곳곳에 녹색이 가득합니다.

 

 

 

 

옆 건물인 르 메르디앙 알아까 비치 리조트가 보이네요.

 

 

 

동쪽을 향해 있어서 바다에서 동트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해는 산 뒤로 집니다.

 

밤에는 레알 불을 켜 놓더군요. 

 

날씨만 서늘하면 불멍하기 딱..............인데

 

스파는 부속 건물에 있습니다.

 

리조트 정원에는 시푸드를 취급하는 바인 드리프트 시푸드 바가 있습니다.

 

여름에야 무용지물이지만 겨울에는 원형으로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도 있고...

 

나름 로맨틱한 테이블도 있습니다.

 

 

 

내부는 바스럽게 생겼습니다.

 

 

 

 

 

 

 

 

 

리조트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비치 근처에 어덜트 풀이 있습니다.

 

 

 

파라솔이 선베드 수와 일치하지 않아서 늦게 도착하면 파라솔 없이 이용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까 방에서 봤던 동산 밑에 자리잡은 풀은 패밀리 풀입니다.

 

 

 

아이들용 장난감이나 무알콜 음료수를 파는 가판이 있고,

 

유아용 풀도 있습니다.

 

 

비치 리조트에 왔으니 비치도 가 봅니다.

 

 

 

 

 

물론 무료는 아닌 워터 스포츠를 이용할 수 있고,

 

선베드도 있습니다. 

 

해변가를 가로지르는 저 돌무더기는 리조트와 퍼블릭 비치를 구분하는 경계선입니다.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는 알아까 비치에서 그나마 가장 최근에 들어선 리조트로 가장 오래되고 세월이 느껴지는 르 메르디앙 알아까 비치 리조트와는 다른 분위기를 제공하는 리조트입니다. 

 

한편, 인터컨티넨탈 푸자이라 리조트보다 5개월 앞선 2008년 6월 계약을 발표했던 인터컨티넨탈 라스 알카이마 미나 알아랍 리조트는 프로젝트가 사실상 취소되었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부활하는 우여곡절과 이 동네 특유의 잇다른 연기 끝에 첫 발표 후 무려 14년 만인 2022년 2월 1일 개장을 일단 확정짓고 현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11월 15일 개장 예장으로 소개되다가 확 미뤄져 버렸으니 준비 상황에 따라 또 연기할 가능성도 언제든지 있다는 것이 함정.

 

미나 알아랍에 자리잡은 라스 알카이마 리조트는 190실 규모의 푸자이라 리조트와 달리 객실, 스위트룸 외에도 빌라와 샬렛 등을 합쳐 351실 규모의 대형 리조트가 될 예정입니다.

 

덧, 앞서 소개해드렸듯 여러 리조트가 들어선 알아까 비치 근처에 이드 알아드하 연휴를 앞둔 지난주 목요일 새로운 리조트가 문을 열었습니다. 도로 상에선 보이지 않는 숨겨진 리조트는 다음 포스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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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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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 8. 2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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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와 북부 토후국 지도

 

샤르자, 아즈만, 움 알꽈인,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가 있는 UAE의 북부 지역과 오만 국경지역 일대를 자세히 보면 흥미롭다 못해 골때리는 지역들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됩니다.

1) UAE에서 육로로 비자런을 해야 하는데 오만 본토와는 동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오만 땅 캇삽쪽 국경을 간다던가... ([비자] 길어지는 비자수속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되는 UAE-오만 비자런 참조)

2) 심지어 캇삽에서 오만만을 따라 해안도로로만 내려오게 될 경우 넓지도 않은 지역이 세 곳으로 나뉘어진 딥바 알바야 (오만), 딥바 알히즌 (샤르자), 딥바 알푸자이라 (푸자이라)를 거쳐 푸자이라, 코르팟칸 (샤르자) ([사르자] 오만 만과 푸자이라에 둘러싸인 항구 도시 코르팟칸의 관광지, 코르팟칸 비치 참조), 푸자이라, 칼바 (샤르자), 푸자이라를 거쳐야만 오만으로 연결이 된다던가...

3) 코르팟칸에서 푸자이라로 내려가는 길에 길을 잘못 빠지면 잘 알려지지는 않은 UAE 내 또 하나의 오만 영토인 마드하로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샤르자 땅인 나흐와를 지나 또다시 마드하를 거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의 경계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던가...

4) 라스 알카이마와 오만의 국경 지역일 줄 알았던 곳 한 켠에 뜬금없이 두바이 땅 핫타가 있다던가...

UAE 북부와 오만 북부 지역은 경계가 엄청 모호해 굳이 오만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여러 나라를 지나치면서도 국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뭐... 동네 분위기 자체가 다르긴 합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 동네 국경은 경계도 모호하게 그야말로 난잡하게 뒤섞여 있을까요? 

 

이 모든 복잡한 국경의 시작은 아라비아 반도 내 식민제국이자 UAE 일대를 통치했던 오만해양제국 (1692년~1856년)의 흥망성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모든 것의 시작, 오만해양제국의 흥망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시발점이 된 사우드 씨족의 첫 국가 디리야 토후국이 아라비아 반도 복판에 건국을 선포했던 1744년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692년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서는 야루바 왕조의 네번째 이맘 (통치자) 사이프 빈 술탄이 관개수로를 도입해 내륙지역에 물을 공급하면서 발달시킨 농업으로 일군 경제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그동안 오만 일대를 점령해왔던 포르투갈군을 내쫓은 후 알바티나 지역의 마을 루스타끄를 도읍지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오만해양제국의 국기

이 나라가 북쪽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너머 오늘날 이란과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동쪽 해얀 일대와 예멘 일부,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로 확장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동해안을 타고 오늘날의 모잠비크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식민 제국 오만해양제국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에서 디리야 토후국이 선포되었던 1744년, 페르시아군의 2차 침공 중 최후의 격전지였던 소하르 주 포위 공격을 9개월 동안 버틴 끝에 결국 물러나게 만든 소하르 주의 주지사 아흐메드 빈 사이드 알부사이드가 그 기세를 이어 오만해양제국의 시작이었던 야루바 왕조를 몰락시키고 현재의 오만 통치자 술탄 까부스로 이어지는 알사이드 왕조를 건국하게 됩니다. 

 

오만해양제국

 

오만해양제국은 1856년 통치자 사이드 빈 술탄이 사망한 후 가족간의 분열로 그의 세째 아들 쑤와이니 빈 사이드가 이끄는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 (1856~1970)과 여섯째 아들 마지드 빈 사이드가 술탄임을 참칭하며 분가한 잔지바르 술탄국 (1856~1964)으로 양분됩니다.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은 1970년 현 통치자인 술탄 까부스 빈 사이드가 영국과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 술탄 사이드를 폐위시킨 후 패망시키고 오늘날의 오만 술탄국을 세웠으며, 잔지바르 술탄국은 그보다 앞선 1964년 패망하여 오늘날의 탄자니아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관련 논문 오만해양제국의 융성과 추락 - 한국중동학회) 참조   

 

아라비아 반도 내 오만해양제국의 영역이 ㄱ자 형태를 띄게 되고, 사우드 왕가쪽과 큰 갈등이 없었던 것은 바로 사우디, 오만, UAE, 예멘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칼리, 즉 엠티 쿼터 때문입니다. ([룹알할리] 언차티드3의 배경이 된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 칼리와 잃어버린 도시 (1) 참조)

 

 

사우드 왕조가 몇 차례 흥망성쇠를 거치며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의 통일 전쟁을 치루느라 신경쓸 여력도 없었겠지만, 반도의 4분의 1을 차지한 어마무시한 사막의 존재는 사우디와 오만이 국경을 맞닿고 있으면서도 육로로는 연결될 수 없었던,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인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가 막혀 사우디와 오만을 육로로 오가려면 UAE로 우회하여 총 1,700여킬로미터의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가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최근들어 개통된 사우디-오만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1억3천만 평방미터 이상의 모래를 퍼내야먄 했다니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겠죠.

 

 

2. 오만해양제국의 위기와 알까시미 씨족의 세력화 (1747~1820)- 오만 월경지의 탄생

오만해양제국의 전반기를 이끌었던 야루바 왕조가 기세좋게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아라비아 반도 내 북부 변두리 지역의 로컬 유목 씨족들은 오만에 있는 이맘에게 충성을 바쳐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만해양제국이 1738~1744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고 소하르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당하자, 움추리고 있던 지방 씨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라스 알카이마 시내 일대에 자리를 잡아 토후국을 세우고 해적질과 습격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알까시미 해양연합의 씨족장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알까시미 해양연합은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후 오만에 새로 들어선 알사이드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주둔해 있던 오만 요새와 마을들을 몰아내고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일부 지역은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무산담주의 주도인 카삽과 위요지 마드하가 대표적인 곳으로 오늘날까지 오만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왜 공략하지 못했냐구요?
포르투갈인들이 세우고 오만인들이 물려받은 카삽 요새는 견고하기도 했을 뿐더러 험준한 바위산에 둘러쌓여 있어 해전에 능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유목전사들이 공략하기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UAE 속 또 하나의 오만 월경지로 남게 된 마드하 역시 살기에는 좋지 않는 척박한 산악환경이었기에 오만 땅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만의 월경지 마드하의 일부 지역인 나흐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샤르자의 월경지로 남아 "UAE 영토 내 오만의 위요지 (마드하) 내에 있는 샤르자의 월경지 (나흐와)"라는 월경지와 위요지가 뒤섞인 오묘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캇삽, 마드하와 함께 험준한 산악지형의 도움을 받아 알까시미 씨족의 침공을 막아내고 오만의 일부로 남을 수 있었던 푸자이라는 당초 오만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19세기들어 태세를 전환하여 알까시미 씨족을 따르기로 하면서 오만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캇삽, 딥바, 마드하는 현 오만의 월경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죠.

오만 영토. 빨간색 부분이 UAE 내에 있는 오만의 월경지



3. 영국의 침공 및 라스 알카이마 함락으로 야기된 알까시미 왕조의 분열 (1820~1869)

서 언급한 캇삽과 마드하를 제외한 북부 지역을 점령하며 영역을 확장해갔던 라스 알카이마의 알까시미 왕조는 오만의 영향력에 있던 일부 북부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려던 야심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대놓고 해적질을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교역을 깽판쳐놨던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들을 상대로 영국군이 보복침공을 감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 월경지 병합보다 더 막강한 대영제국의 해군을 상대하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09년 영국군의 라스 알카이마 1차 침공)

 

영국군은 1809년과 1819년 두 차례에 걸쳐 라스 알카이마를 침공한 끝에 알까시미 씨족의 군사력을 완전히 궤멸시킨 후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알까시미 씨족 외에도 일대 토후국 지도자들까지 패키지로 모아 1820년 일반해상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 다야 포트, 1819년 영국군 보복침공 당시 최후까지 저항했던 토후국들의 마지막 보루 참조)

 

1820년 평화협정 이후 해적질을 위한 군사력을 영국군에 의해 거세당한 알까시미 씨족들은 본거지를 라스 알카이마에서 샤르자로 옮긴 후 내부 파벌간의 분열에 들어가 결국 1868년 라스 알카이마가 샤르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후 자국 영토 안에 있던 오만의 월경지들을 빼앗아 올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었습니다.  



4. 라스 알카이마와 샤르자로 나뉘면서 더욱 복잡해진 월경지 (1869~현재):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아니면 자력갱생?1803년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취임한 이후 사우디와의 분쟁 등이 겹치면서 통치권이 조금씩 나뉘기 시작하던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는 1868년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가 취임하면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즉위 1년 후인 1869년 조카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가 샤르자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움 알꽈인의 지원을 받아 자지라 알하므라와 라스 알카이마에서 전투를 벌렸고, 이에 영국군이 해상조약 위반을 문제삼아 샤르자군을 철군시키면서 라스 알카이마 일대를 장악한 셰이크 후마이드는 독립 토후국 라스 알카이마를 선언하게 됩니다.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살림은 자신이 직접 라스 알카이마를 다시 복속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포기하게 되죠..


라스 알카이마는 독립을 선언했던 셰이크 후마이드가 사망한 후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또다시 샤르자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1921년 세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가 1919년에 이은 두 차례의 청원 끝에 영국으로부터 라스 알카이마를 독립 토후국으로, 자신을 그 통치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샤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알까시미 왕조 (1727~현재)
 1. 셰이크 라흐마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27~1760)
 2. 셰이크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60~1777)
 3. 셰이크 사끄르 빈 라쉬드 알까시미 (1777~1803)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08)- 1기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40)- 1기
 2. 셰이크 핫산 빈 알리 (1808~1814)  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
 3. 셰이크 핫산 빈 라흐마 (1814~1820)  3.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1866)- 2기
 4.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20~1866)- 2기
 5. 셰이크 이브라힘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7)  4.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8)
 6.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7~1868)  5.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83)
 7.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69)  6. 셰이크 사끄르 빈 칼리드 알까시미 (1883~1914)
 8.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 (1869~1900)  7. 셰이크 칼리드 빈 아흐마드 알까시미 (1914~1924)

 8. 셰이크 술탄 (2세)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24~1951)
 9.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 (1921~1948)  9.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51)
 10.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48~2010)  10.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51~1965)- 1기
 11.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2010~현재)  11.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65~1972)
   1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72)- 2기
   13.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72~1987)- 1기
   14. 셰이크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
   15.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현재)- 2기
 ** 이름이 볼드체로 적혀있는 통치자는 임기 전체, 혹은 일부 기간 동안 두 토후국을 동시에 통치.


북부 지역을 호령하던 알까시미 왕조가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로 양분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군소 씨족과 마을들은 어느 토후국을 선택해 자신들을 의탁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는 샤르자와 푸자이라, 그리고 아즈만에 의해 허리가 잘라진 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빨간색 부분이 라스 알카이마 영토

 

샤르자는 오만만에 있는 코르팟칸과 칼바를 자신의 월경지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빨간색 부분이 샤르자 영토

 

당초 오만에서 샤르자에 붙기로 배를 한 번 갈아탔던 알샤르끼 씨족의 푸자이라는 또다시 태세를 전환하여 셰이크 하마드 빈 압둘라 알샤르끼가 1879년 샤르자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키면서 기나긴 독립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오랜 투쟁 끝에 1901년 영국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게 되며, 토후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영국은 결국 1952년이 되어서야 푸자이라를 독립된 토후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빨간색 부분이 푸자이라 영토

 
5. 알까시미 씨족 분열로 이합집산하는 어수선한 사이 농경지대와 본거지를 확보한 아즈만

UAE의 북부지역이 씨족과 마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 UAE 토후국 중 가장 작은 토후국인 아즈만은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에 둘러쌓인 농경지대인 마나마, 그리고 아즈만을 통치하는 알누아이미 씨족의 본거지인 마스푸트를 월경지로 확정하게 됩니다. 특히 마나마의 경우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과 일본이 본격 수출에 들어간 양식 진주의 확산으로 인해 진주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되자, 곡창지대로서의 잠재성을 인지한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후마이드 알누아이미 3세가 적극 투자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빨간색 부분이 아즈만 영토


6. 오만과 아즈만간의 분쟁 사이에서 얼떨결에 월경지를 얻게 된 두바이

그리고 두바이는 하쉬르 빈 막툼이 통치하던 1870~80년대 이웃 지역인 마스푸트에 정착하고 있던 알누아이미 씨족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오만의 술탄 투르키 빈 사이드로부터 하자라인이라 불리던 작은 산악 마을을 양도받게 됩니다. 그 작은 마을이 아즈만, 라스 알카이마, 오만에 둘러싸인 두바이의 유일한 월경지 핫타입니다.   

 


7. 결정적인 이유는 그 누구도 쉽게 오가기 힘들었던 산악지역이기 때문!

UAE 북부 지역의 국경이 그야말로 난잡한 이유는 거주가능한 일부 지역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는 해도 UAE 내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하자르 산맥에서 비롯된 산악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목생활이 중심이 이들에게 있어서 산악지역은 오가는 것은 물론,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 쉽게 영역을 확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남북을 가로지르고 있는 하자르 산맥

 

산악 지역 및 산악 지역에 인접한 농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중심지인 도심과 달리 다양한 자연환경을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두바이와 아즈만은 자신들의 월경지인 핫타와 마나마/마스푸트에 대한 대대적인 걔발계획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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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 아라비안 걸프 리그에서 13위를 차지하여 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번 시즌을 4위로 마감하면서 재승격에 실패한 푸자이라를 연고지로 하는 푸자이라SC는 산만했던 엠블렘을 깔끔하게 가다듬은 새로운 엠블렘과 더불어 다음 시즌 팀을 맡게 될 새 감독을 발표하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산악지역이 많은 푸자이라를 형상화한 듯 산만하면서도 뭔가 어수선해 보이는 엠블렘은...



구단을 상징하는 동물을 앞세워 보다 깔끔하게 바뀌었으며... (영문 구단 이름이 푸자이라SC에서 푸자이라 FC로 바뀐 것은 덤)





무엇보다 예상을 깬 새로운 감독에는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이자 풍운아 디에고 마라도나를 영입했습니다.





구단 이사회를 새롭게 정비한 푸자이라FC의 구단주 셰이크 막툼 빈 하마드 알샤르끼가 직접 나서 영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디에고 마라도나 푸자이라 감독의 계약 기간은 연장 가능한 1년이며, 푸자이라 구단은 감독 계약서에 서명한 후 모종의 임무를 띄고 중국 출장길에 오른 디에고 마라도나가 복귀한 후인 토요일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영입을 자랑할 계획입니다.


11/12시즌 알와슬을 맡으면서 UAE와 인연을 맺은 디에고 마라도나는 12개팀 중 8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경질된 이후 5년 만에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알와슬 감독 당시에는 자신의 명성을 앞세워 돈만 밝히고 성적에는 관심없는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열성적인 알와슬 서포터즈로부터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햇었습니다.


축구와는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도 두바이 스포츠 위원회에 의해 두바이 스포츠 대사에 위촉되는 등 UAE와 인연을 이어갔던 디에고 마라도나는 지난해 자신의 56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아부다비의 내이션 갤러리아 몰 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아르헨티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카페 디에고를 개업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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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여행정보/관광지2016. 10. 2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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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팟칸 비치를 지나 딥바쪽으로 올라가다보면 다시 푸자이라로 돌아와 알비드야 마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다보면 길 반대편 언덕배기에 작은 전망대 두 개가 보이고 알비드야 모스크 안내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알비드야 모스크를 가기 위해 유턴해서 푸자이라 방향을 틀면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나타나고 코너를 돌면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주차장에는 푸자이라 정부, 푸자이라 관광유적청, 알비드야 모스크라는 푯말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푸자이라 관광유적청과의 협력 하에 두바이 지자체가 2003년 복원작업을 마쳤다는 안내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안내 표지석 너머 벽돌로 된 건물은 예배를 드리려는 무슬림들과 방문객을 위한 남녀 화장실이 있습니다.





이 유적지의 주인공인 알비드야 모스크를 향해 가봅니다.





알비드야 모스크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돌과 진흙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네요. 





안내 표지판을 지나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 앞에 있고...





바로 이 유적지의 주인공인 알비드야 모스크가 모습을 수줍게 드러냅니다.





모스크 앞에 세워진 방문 시간 및 방문 가이드. 유독 눈에 띄는 건 "벽을 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입니다. 





이 작은 모스크가 푸자이라의 관광 명소가 된 이유는 UAE 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최근에 푸자이라 도심에 세워진 UAE에서 두번째로 큰 셰이크 자이드 모스크가 푸자이라를 대표하는 모스크가 되고 있지만요.


알비드야 모스크가 언제,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정확한 건축시기를 규명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앞서 얘기한대로 진흙과 벽돌로만 지어졌고 나무가 전혀 사용되지 않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도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하네요. 1997년과 98년에 걸쳐 푸자이라 고고학 센터와 시드니 대학이 유적을 조사한 결과 서기 1446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냈다고 합니다만,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다보니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원래 모스크로 지어지진 않았지만, 차후에 모스크로 사용된게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말이죠. 


모스크 앞 작은 마당에는 예배에 사용하기 위한 양탄자가 있습니다.





모스크의 전경. 하늘을 향해 우뚝솟은 전형적인 미나렛과는 거리가 먼 찐빵모자 같은 돔형 미나렛이 네 개가 있습니다.





모스크의 입구. 53평방미터로 겉보기처럼 그리 넓지 않은 모스크의 중심에는 건물을 지탱하고 미나렛으로 연결되는 기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모스크 내에는 두 개의 스탠드형 에어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빛을 받아들이는 작은 창의 문양.











곳곳에 이슬람 관련 책자와 안내 팜플렛이 있습니다.





미나렛 역할을 하는 돔 내부는 민무늬지만 일부 돔에는 튀어나온 조각들이 있습니다. 





모스크 내부를 구경하고 위에 있는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 봅니다.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모스크 옆모습.







벽돌로 지은 화장실 뒷편에는 모스크 이맘이 머무는 숙소가 있습니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에는 돌계단이 놓여져 있습니다. 양갈래 길의 왼쪽에는 낮은 곳에 위치한 작은 전망대가,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높은 곳에 큰 전망대가 있습니다.





일단은 작은 전망대부터 올라가 봅니다.







그리 넓지않은 만큼 내부는 간소합니다.







전망대 틈새로 보이는 마을과 오만 만 풍경.





작은 전망대 부근에서 보는 비드야 마을의 풍경.









좀더 높은 곳에 자리잡은 큰 전망대로 올라가 봅니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보는 비드야 마을의 풍경.







큰 전망대는 크기만 클뿐 구조는 작은 전망대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파노라마뷰로 훑어본 비드야 마을 일대의 풍경.





큰 전망대 부근에서 내려다 본 작은 전망대와 비드야 마을의 풍경.





큰 전망대 부근에서 내려다 본 알비드야 모스크 유적지와 비드야 마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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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여행정보/관광지2016. 10. 2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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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원이 뛰는 딥바 알푸자이라와 이명주가 뛰는 알아인의 경기를 보기 위해 푸자이라를 찾았다가 시간 여유가 있어 겸사겸사 푸자이라에서 오만 만을 따라 북쪽에 위치한 딥바 푸자이라를 향해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딥바 알푸자이라는 연고지인 딥바에 경기장이 없어 홈경기를 푸자이라 클럽 스타디움에서 치루고 있습니다. 정작 푸자이라 클럽 스타디움의 주인인 푸자이라 클럽은 지난 시즌에 강등당했거든요.


푸자이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대형 국기 게양대가 있고 그 밑에 UAE 대통령 셰이크 칼리파 사진과 함께 샤르자 통치자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의 사진이 서 있습니다. 푸자이라에 왜 샤르자 통치자의 사진이 자리잡고 있을까요? 



여기가 바로 푸자이라와 샤르자의 국경으로 국경 검문소가 따로 있지는 않아 큰 의미는 없지만, 푸자이라에서 자연스레 샤르자의 항구 도시 코르파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코르팟칸은 기원전 3천년경부터 인류가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남아있다고 하며 중세에는 포르투갈과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아왔었다고 합니다.


사실 UAE 국토의 10% 남짓한 북부 에미레이트 지역의 국경은 상당히 너저분합니다;;;;; 연합국인데다 국경 검문소 따위는 없으니 별 의미는 없다고는 해도 무심히 지나치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게 되는 셈이죠. 가령 라스 알카이마에서 육로로 오만 본토로 이동하게 되면 푸자이라와 샤르자를 거쳐야 오만에 갈 수 있거든요.... 응?




지도 오른쪽의 오만 만을 기준으로 동네마다 소속 토후국이 다릅니다. 


하타- 두바이

칼바- 샤르자

푸자이라- 푸자이라

마드하 (마다로 표기)- 심지어 오만!

코르팟칸 (코어 파칸으로 표기)- 샤르자

엘바디아, 알아까, 다드나- 푸자이라

딥바 알푸자이라- 푸자이라


심지어 지도에는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딥바 지역은 푸자이라에 속한 딥바 알푸자이라와 그 북쪽엔 샤르자에 속한 딥바 알히즌, 그리고 가장 북쪽엔 오만의 월경지 무산담에 속한 딥바 알바야 지역으로 쪼개져 있을 정도입니다. 북부 에미레이트 지역의 토후국 별 영토를 구별해 보면 아래 이미지와 같게 됩니다.




상당히 너저분한 국경이 생기게 된 것은 한때 북부 에미레이트를 장악하고 가장 부유했던 샤르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잇속만 챙기느라 군대를 파견하긴 했지만 아라비아 반도 내부의 토후국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던 영국의 무관심이 맞물렸다고 합니다. 라스 알카이마는 샤르자의 통치가문인 알까시미 가문 내의 문제로 분가하면서 18세기부터 별개의 나라로 갈라진 대신 결국 라스 알카이마의 영토는 푸자이라의 독립과 맞물리면서 남북이 끊어져 버렸고, 샤르자 본토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던 푸자이라 지역은 20세기 들어서 알샤르끼 씨족이 샤르자에서 독립하는 길을 택하면서 뒤늦게 새로운 토후국으로 자리잡았지만, 샤르자와의 국경분쟁 끝에 결국 푸자이라 영토 내에 칼바, 코르팟칸과 딥바 알히즌을 샤르자의 월경지로 남겨두게 되었죠. 


푸자이라 도심에서 딥바를 향해 30여분 정도 올라가면 코르팟칸 도심지를 지나 북쪽에 위치한 코르팟칸 해변을 만나게 됩니다. 진행 방향으로 오른쪽에 해변이, 왼쪽에 산악지대가 펼쳐집니다. 멀리 산 밑에 보이는 하얀 건물은 코르팟칸의 유일한 4성급 호텔인 오세아닉 코르팟칸 리조트 앤 스파.







코르팟칸 해변의 남쪽은 전형적인 해변이 펼쳐집니다.





해변 맞은편에는 현대식 컨테이너 터미널이 들어선 코르팟칸 항구가 자리잡고 있죠.





오세아닉 리조트로 연결되는 코르팟칸 해변의 북부 지역엔 녹색의 공원이 펼쳐집니다.











배를 이용한 수상 레저 외에 금요일에는 패러 세일링도 손님들을 맞아 해변가에 떠있는 형형색색의 풍선에 탑승한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코르팟칸 해변을 지나면 은근슬쩍 다시 푸자이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초입에 푸자이라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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