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C/GU/사우디2019.09.17 05:47


BTS의 평소 신조와 상충되는 면이 있는 사우디의 정치적 행위로 인해 아미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야기되었던 BTS의 장기 휴가 후 첫 복귀 콘서트인 사우디 투어 티켓팅이 예정대로 9월 16일 오후 4시 (한국시간 밤 10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문화] BTS의 첫 사우디 스타디움 투어 티켓 판매 일정 및 가격! 참조)


BTS의 사우디 리야드 공연은 당초 발표되었던 일정보다 며칠 늦게 시작하게 될 리야드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이기도 합니다. 리야드 시즌의 이벤트 일정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생성된 리야드 시즌 트위터 계정의 두번째 트윗이자 첫 이벤트 공지가 BTS 공연 티켓팅 안내 소식이니 말이죠.  



이벤트 전자비자 발급 사이트인 샤렉에서 바로 판매하여 세시간 이상 서버를 다운시켰던 지난 7월 슈주 콘서트 티켓팅을 고려한 탓인지 ([문화] 예매 사이트 서버다운으로 화답한 아랍 엘프의 오랜 숙원을 이룬 사우디 최초의 K-POP 콘서트, 슈주의 Super Show 7s! 참조), 객석 규모가 10배를 상회하는 BTS 공연의 티켓팅은 전문 사이트인 티켓마스터사우디에서 단독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티켓팅 시작 후 1시간 10분 뒤인 밤 11시 10분 경에 예약 사이트 접속을 시도했습니다. 아예 서버가 다운되었던 슈주 때와는 달리 대기를 타고 있으라는 팝업창이 올라옵니다. 당신은 예매하러 줄 서고 있으며, 차례가 왔을 때 사이트에 접속할 20분의 시간이 주어질 거다. 이메일을 등록하면 차례가 왔을 때 알림 메일 보내줄께.....라는 아주 막연한 멘트와 함께 말이죠...



일단 메일주소를 등록시켜놓고 (포스팅이 끝난 지금까지도 알림 메일이 오지 않았지만... 결국 15시간여 만에 메일 통지가 날라왔네요;;;;), 



일단 메일 따위는 잊고 어차피 알사드와 알나스르의 아챔 8강 2차전을 보고 있던 터라 한번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챔 8강 2차전 포스팅을 대충 마치고 난 새벽 3시, 줄선지 네시간이 흘렀음에도 대기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꿈나라 행~~~



아침에 일어나 PC를 보니 차례가 언제 올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핸드폰으로 접속을 시도했더니, 의외로 금방 차례가 오네요?



PC를 통해 처음 사이트에 접속한 이후 무~~~~려 10시간 19분만에 따로 접속한 모바일을 통해 접속해도 된다는 팝업이 뜹니다. 무슨 대용량 파일을 밤새 다운놓고 받아뒀던 옛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하네요.



이 메인화면을 보기가 왜이리 힘들었던지요! 만약 UAE에 거주해서 티켓마스터 사이트에 회원이 등록되어 있어도, 사우디 사이트는 따로 회원 등록을 해야 합니다.



티켓은 크게 가장 비싼 사운드체크 패키지와 9개 구역으로 나뉜 일반 티켓이 있습니다.



사운드체크 패키지는 일반 관중보다 한 시간 일찍 입장하여 3곡의 리허설을 미리 지켜볼 수 있는 패키지로...



중앙 무대 및 돌출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9개 구역의 일반석 구역 배치도. VIP석이 무대 중앙이 아니라 사이드에 있는 것이 눈에 띄네요.



다소 쌩뚱맞아 보이는 VIP석은 경기장 본부석 주위 구역입니다.



참고로 BTS의 리야드 공연이 열릴 킹 파흐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의 외관. 



5억 1천만달러를 들여 지은 킹 파흐드 스타디움은 최대 68,752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1982년에 착공하여 1987년 공식 개장했습니다. 밖에서 볼 때 텐트 모양을 형상화한 상층부가 인상적인 킹 파흐드 스타디움은 현재 알나스르와 알샤밥의 홈구장으로 사우디 리그가 포함된 FIFA 13부터 사우디 리그를 대표하는 경기장으로 게임 내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비전 2030에 따라 지난 2017년 9월 23일 건국 87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의 경기장 입장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회] 사우디, 2018년부터 그간 제한해왔던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을 허용키로! 참조)   


객석에서 볼 공연장 내부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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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우디_아라비아 | 리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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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사우디2019.09.09 22:21


10월 15일부터 시작될 리야드 시즌 시작에 맞춰 10월 11일 리야드 킹 파흐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단일 가수 공연으로는 사우디 역사상 첫 스타디움 콘서트의 주인공이 된 BTS의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의 티켓팅 일정 및 가격이 콘서트 한달여를 앞두고 전격 공개되었습니다.


BTS는 세계적인 대세 아이돌이 되기 전인 2016년 3월 아부다비 야스 아일랜드의 두 아레나에서 열렸던 연합 콘서트 KCON 2016 Abu Dhabi를 통해 UAE에서 첫 공연을 가진 이후 3년 7개여월 만에 사우디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 두번째 K-POP 그룹이자,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논란이 되었던 리야드 스타디움 투어로 걸프지역을 두번째로 찾게 되었습니다.



걸프지역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임을 자부하는 UAE 내에서도 제대로 열린적 없던 K-POP 그룹의 단독 공연이 슈주에 이어 BTS까지 연속으로 사우디 공연을 확정짓게 되자 UAE에 거주하는 많은 팬들이 #BTSConcertInUAE 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UAE 공연을 기대하고 있지만...... ([문화] 슈주에서 BTS까지, UAE를 위시한 걸프지역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K-POP의 인기! 참조)   다만, BTS가 10월에 문을 열게 될 두바이 버전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인 두바이 스타스에 K-POP 스타로는 EXO를 제치고 가장 먼저 헌정된 바 있어, 리야드 공연 일정을 겸해 개장식 참석차 두바이를 방문할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문화] 왜 K-POP을 위시한 한류가 젊은 걸프지역 여성들을 사로잡게 되었을까? 참조)  


BTS 사우디 콘서트 티켓은 www.ticketmasterksa.com 을 통해 사우디 시간으로 9월 16일 오후 4시 (한국시간 9월 16일 밤 10시)부터 시작됩니다. 아직 좌석 배치도는 나오지 않은 가운테 좌석은 총 10개 구역으로 나뉘게 되며 티켓 가격은 최저 200리얄 (약 6만원)에서 최대 1200리얄 (약 36만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슈주의 젯다 콘서트를 판매했던 전자비자 사이트 샤렉이 아닌 이벤트 티켓 판매 전문 사이트인 티켓마스터에서 표를 판매하는 것은 아무래도 4천석 티켓을 판매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몇 시간 동안 사이트 서버가 다운된 점을 감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화] 예매 사이트 서버다운으로 화답한 아랍 엘프의 오랜 숙원을 이룬 사우디 최초의 K-POP 콘서트, 슈주의 Super Show 7s! 참조) 아무래도 좌석수로만 거의 10배 이상의 스타디움 공연이니까요.


하지만, 티켓 구매와 동시에 논스톱으로 전자비자를 바로 신청할 수 있었던 샤렉과 달리 티켓마스터를 통해 티켓 구매 후 샤렉에 따로 들어가 전자비자를 신청하거나 ([비자] 사우디 최초의 첫 이벤트 전용 전자 관광비자 시스템 샤렉 서비스 개시! 참조), 9월 27일부터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알려진 90일 체류가 가능한 사우디 관광비자 (신청비 117$)를 따로 신청해야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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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우디_아라비아 | 리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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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09.02 21:07


아부다비 교통부 (DOT)는 10월 15일부터 시행될 도로 통행료 징수를 앞두고, 9월 2일 오후부터 비 아부다비 등록차량 소유주들의 차량 등록을 위한 사이트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당초 8월 30일부터 운영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한 것에 비하면 며칠 늦어지긴 했지만요. ([교통] 아부다비, 10월 15일부터 두바이 살릭보다 진일보한 톨게이트 시스템을 도입해 통행료 징수키로! 참조)


(이미지를 링크하시면 공식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별도로 태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정보를 제출하여 태그를 유리창에 붙이자마자 거의 실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두바이의 톨게이트 시스템 살릭 ([교통] 두바이 운전의 필수품이자 진일보한 하이패스, 살릭 (Salik)의 모든 것 참조)과 달리 아부다비의 톨 시스템은 차량번호판을 인식하여 과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살릭처럼 추가로 태그를 구매하여 차 유리창에 덕지덕지 부착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차가 아부다비 차량 번호판이 아니라면 통행료 과금용 계정 생성을 위해 아부다비 교통부에 차량을 따로 등록해야만 합니. (아부다비 등록차량의 경우 차량번호 등록과정에서 이미 개인 정보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계정 생성과정을 생략하고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암호 설정만 할 수 있게 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에미레이츠 ID 및 차량 정보, 이메일, 핸드폰 번호와 함께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계정을 생성한 후 인증 및 추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당초 예정보다 며칠 늦게 등록 사이트가 열렸음에도 사이트 개설 첫날 계정 생성에 성공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에미레이츠 ID 정보가 유효하지 않다는 에러 메시지로 인해 등록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 오류 때문에 수십번의 실패 끝에 겨우 성공했;;;;;)



만약, 이 오류가 해결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면 등록시 입력한 핸드폰 번호로 본인 확인을 위한 4자리의 OTP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OTP를 성공적으로 입력하면 성공적으로 계정이 생성되었음을 확인해주는 페이지가 나타나게 되며, 해당 에미레이츠 ID 번호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차량 정보 (제조업체/차종/몇년형모델/차량등록지/차량번호)가 나란히 뜨게 되며 상태를 ON 해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차량 등록에 들어가게 됩니다. 



차량 등록비는 1대당 100디르함으로 여러 대의 차량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에누리 없이 100디르함씩 추가로 납부해야 합니다.



신용카드로 100디르함을 결제하는 것으로 계정생성 및 등록절차는 마무리 됩니다.



두바이 살릭 태그과 마찬가지로 실제 등록비는 50디르함이며, 자신의 차량이 정상적으로 등록되었을 경우 50디르함은 본인 계좌에 충전되어 톨게이트 통과시마다 4디르함 (1일 한도 16디르함)씩 차감됩니다.



로그인 후 회원 메뉴는 잔고 및 범칙금, 차량 현황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대쉬보드", 등록된 차량을 관리할 수 있는 "차량관리", 이메일과 핸드폰 번호, 비밀번호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회원정보"의 세가지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직은 계정 정보를 홈페이지에서만 확인할 수 있지만, 추후 스마트 살릭과 같은 전용 앱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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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아랍_에미리트_연합 | 아부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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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08.25 23:24


샤르자, 아즈만, 움 알꽈인,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가 있는 UAE의 북부 지역과 오만 국경지역 일대를 자세히 보면 흥미롭다 못해 골때리는 지역들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됩니다.

1) UAE에서 육로로 비자런을 해야 하는데 오만 본토와는 동떨어진 아라비아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오만 땅 캇삽쪽 국경을 간다던가... ([비자] 길어지는 비자수속 과정에서 한번은 거쳐야 되는 UAE-오만 비자런 참조)

2) 심지어 캇삽에서 오만만을 따라 해안도로로만 내려오게 될 경우 넓지도 않은 지역이 세 곳으로 나뉘어진 딥바 알바야 (오만), 딥바 알히즌 (샤르자), 딥바 알푸자이라 (푸자이라)를 거쳐 푸자이라, 코르팟칸 (샤르자) ([사르자] 오만 만과 푸자이라에 둘러싸인 항구 도시 코르팟칸의 관광지, 코르팟칸 비치 참조), 푸자이라, 칼바 (샤르자), 푸자이라를 거쳐야만 오만으로 연결이 된다던가...

3) 코르팟칸에서 푸자이라로 내려가는 길에 길을 잘못 빠지면 잘 알려지지는 않은 UAE 내 또 하나의 오만 영토인 마드하로 연결되고, 그 길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샤르자 땅인 나흐와를 지나 또다시 마드하를 거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의 경계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던가...

4) 라스 알카이마와 오만의 국경 지역일 줄 알았던 곳 한 켠에 뜬금없이 두바이 땅 핫타가 있다던가...

UAE 북부와 오만 북부 지역은 경계가 엄청 모호해 굳이 오만으로 넘어가지 않는 한 여러 나라를 지나치면서도 국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뭐... 동네 분위기 자체가 다르긴 합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 동네 국경은 경게도 모호하게 그야말로 난잡하게 뒤섞여 있을까요? 


이 모든 복잡한 국경의 시작은 아라비아 반도 내 식민제국이자 UAE 일대를 통치했던 오만해양제국 (1692년~1856년)의 흥망성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모든 것의 시작, 오만해양제국의 흥망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시발점이 된 사우드 씨족의 첫 국가 디리야 토후국이 아라비아 반도 복판에 건국을 선포했던 1744년 ([역사] 사우디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 사우드 씨족의 오랜 투쟁기, 사우디아라비아왕국 건국사 참조)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692년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서는 야루바 왕조의 네번째 이맘 (통치자) 사이프 빈 술탄이 관개수로를 도입해 내륙지역에 물을 공급하면서 발달시킨 농업으로 일군 경제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 그동안 오만 일대를 점령해왔던 포르투갈군을 내쫓은 후 알바티나 지역의 마을 루스타끄를 도읍지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이 나라가 북쪽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너머 오늘날 이란과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동쪽 해얀 일대와 예멘 일부,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으로로 확장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동해안을 타고 오늘날의 모잠비크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식민 제국 오만해양제국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에서 디리야 토후국이 선포되었던 1744년, 페르시아군의 2차 침공 중 최후의 격전지였던 소하르 주 포위 공격을 9개월 동안 버틴 끝에 결국 물러나게 만든 소하르 주의 주지사 아흐메드 빈 사이드 알부사이드가 그 기세를 이어 오만해양제국의 시작이었던 야루바 왕조를 몰락시키고 현재의 오만 통치자 술탄 까부스로 이어지는 알사이드 왕조를 건국하게 됩니다. 



오만해양제국은 1856년 통치자 사이드 빈 술탄이 사망한 후 가족간의 분열로 그의 세째 아들 쑤와이니 빈 사이드가 이끄는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 (1856~1970)과 여섯째 아들 마지드 빈 사이드가 술탄임을 참칭하며 분가한 잔지바르 술탄국 (1856~1964)으로 양분됩니다. 무스카트 오만 술탄국은 1970년 현 통치자인 술탄 까부스 빈 사이드가 영국과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쿠데타로 아버지 술탄 사이드를 폐위시킨 후 패망시키고 오늘날의 오만 술탄국을 세웠으며, 잔지바르 술탄국은 그보다 앞선 1964년 패망하여 오늘날의 탄자니아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관련 논문 오만해양제국의 융성과 추락 - 한국중동학회) 참조   


아라비아 반도 내 오만해양제국의 영역이 ㄱ자 형태를 띄게 되고, 사우드 왕가쪽과 큰 갈등이 없었던 것은 바로 사우디, 오만, UAE, 예멘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칼리, 즉 엠티 쿼터 때문입니다. ([룹알할리] 언차티드3의 배경이 된 세계 최대의 사막 루브으 알 칼리와 잃어버린 도시 (1) 참조)



사우드 왕조가 몇 차례 흥망성쇠를 거치며 아라비아 반도 중심부의 통일 전쟁을 치루느라 신경쓸 여력도 없었겠지만, 반도의 4분의 1을 차지한 어마무시한 사막의 존재는 사우디와 오만이 국경을 맞닿고 있으면서도 육로로는 연결될 수 없었던,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인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가 막혀 사우디와 오만을 육로로 오가려면 UAE로 우회하여 총 1,700여킬로미터의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가는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최근들어 개통된 사우디-오만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1억3천만 평방미터 이상의 모래를 퍼내야먄 했다니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겠죠.




2. 오만해양제국의 위기와 알까시미 씨족의 세력화 (1747~1820)- 오만 월경지의 탄생

오만해양제국의 전반기를 이끌었던 야루바 왕조가 기세좋게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아라비아 반도 내 북부 변두리 지역의 로컬 유목 씨족들은 오만에 있는 이맘에게 충성을 바쳐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만해양제국이 1738~1744년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고 소하르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당하자, 움추리고 있던 지방 씨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의 라스 알카이마 시내 일대에 자리를 잡아 토후국을 세우고 해적질과 습격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알까시미 해양연합의 씨족장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알까시미 해양연합은 페르시아로부터 해방된 후 오만에 새로 들어선 알사이드 왕조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고 주둔해 있던 오만 요새와 마을들을 몰아내고 지역의 새로운 세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일부 지역은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무산담주의 주도인 카삽과 위요지 마드하가 대표적인 곳으로 오늘날까지 오만의 월경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왜 공략하지 못했냐구요?


포르투갈인들이 세우고 오만인들이 물려받은 카삽 요새는 견고하기도 했을 뿐더러 험준한 바위산에 둘러쌓여 있어 해전에 능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유목전사들이 공략하기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기 때문입니다. 



UAE 속 또 하나의 오만 월경지로 남게 된 마드하 역시 살기에는 좋지 않는 척박한 산악환경이었기에 오만 땅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만의 월경지 마드하의 일부 지역인 나흐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샤르자의 월경지로 남아 "UAE 영토 내 오만의 위요지 (마드하) 내에 있는 샤르자의 월경지 (나흐와)"라는 월경지와 위요지가 뒤섞인 오묘한 동네가 되었습니다. 



캇삽, 마드하와 함께 험준한 산악지형의 도움을 받아 알까시미 씨족의 침공을 막아내고 오만의 일부로 남을 수 있었던 푸자이라는 당초 오만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19세기들어 태세를 전환하여 알까시미 씨족을 따르기로 하면서 오만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캇삽, 딥바, 마드하는 현 오만의 월경지로 남을 수 있게 되었죠.



3. 영국의 침공 및 라스 알카이마 함락으로 야기된 알까시미 왕조의 분열 (1820~1869)

서 언급한 캇삽과 마드하를 제외한 북부 지역을 점령하며 영역을 확장해갔던 라스 알카이마의 알까시미 왕조는 오만의 영향력에 있던 일부 북부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려던 야심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대놓고 해적질을 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교역을 깽판쳐놨던 것이 화근이 되어 이들을 상대로 영국군이 보복침공을 감행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알까시미 씨족은 오만 월경지 병합보다 더 막강한 대영제국의 해군을 상대하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809년 영국군의 라스 알카이마 1차 침공)


영국군은 1809년과 1819년 두 차례에 걸쳐 라스 알카이마를 침공한 끝에 알까시미 씨족의 군사력을 완전히 궤멸시킨 후 딴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알까시미 씨족 외에도 일대 토후국 지도자들까지 패키지로 모아 1820년 일반해상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 다야 포트, 1819년 영국군 보복침공 당시 최후까지 저항했던 토후국들의 마지막 보루 참조)


1820년 평화협정 이후 해적질을 위한 군사력을 영국군에 의해 거세당한 알까시미 씨족들은 본거지를 라스 알카이마에서 샤르자로 옮긴 후 내부 파벌간의 분열에 들어가 결국 1868년 라스 알카이마가 샤르자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후 자국 영토 안에 있던 오만의 월경지들을 빼앗아 올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었습니다.  



4. 라스 알카이마와 샤르자로 나뉘면서 더욱 복잡해진 월경지 (1869~현재):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아니면 자력갱생?

1803년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가 취임한 이후 사우디와의 분쟁 등이 겹치면서 통치권이 조금씩 나뉘기 시작하던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는 1868년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가 취임하면서 갈라지게 됩니다. 그의 즉위 1년 후인 1869년 조카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가 샤르자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움 알꽈인의 지원을 받아 자지라 알하므라와 라스 알카이마에서 전투를 벌렸고, 이에 영국군이 해상조약 위반을 문제삼아 샤르자군을 철군시키면서 라스 알카이마 일대를 장악한 셰이크 후마이드는 독립 토후국 라스 알카이마를 선언하게 됩니다. 샤르자 통치자 셰이크 살림은 자신이 직접 라스 알카이마를 다시 복속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포기하게 되죠.


라스 알카이마는 독립을 선언했던 셰이크 후마이드가 사망한 후 권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또다시 샤르자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1921년 세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가 1919년에 이은 두 차례의 청원 끝에 영국으로부터 라스 알카이마를 독립 토후국으로, 자신을 그 통치자로 인정받게 되면서 샤르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알까시미 왕조 (1727~현재)

 1. 셰이크 라흐마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27~1760)

 2. 셰이크 라쉬드 빈 마타르 알까시미 (1760~1777)

 3. 셰이크 사끄르 빈 라쉬드 알까시미 (1777~1803)

라스 알카이마


샤르자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08)- 1기

 1.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03~1840)- 1기

 2. 셰이크 핫산 빈 알리 (1808~1814)

 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

 3. 셰이크 핫산 빈 라흐마 (1814~1820)

 3.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40~1866)- 2기

 4. 셰이크 술탄 빈 사끄르 알까시미 (1820~1866)- 2기

 

 5. 셰이크 이브라힘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7)

 4.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6~1868)

 6. 셰이크 칼리드 빈 술탄 알까시미 (1867~1868)

 5.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83)

 7. 셰이크 살림 빈 술탄 알까시미 (1868~1869)

 6. 셰이크 사끄르 빈 칼리드 알까시미 (1883~1914)

 8. 셰이크 후마이드 빈 압둘라 알까시미 (1869~1900)

 7. 셰이크 칼리드 빈 아흐마드 알까시미 (1914~1924)

 

 8. 셰이크 술탄 (2세)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24~1951)

 9. 셰이크 술탄 빈 살림 알까시미 (1921~1948)

 9. 셰이크 무함마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1951)

 10. 셰이크 사끄르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48~2010)

 10.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51~1965)- 1기

 11. 셰이크 사우드 빈 사끄르 알까시미 (2010~현재)

 11. 셰이크 칼리드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65~1972)

 

 12. 셰이크 사끄르 빈 술탄 알까시미 (1972)- 2기

 

 13.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72~1987)- 1기

 

 14. 셰이크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

 

 15. 셰이크 술탄 빈 무함마드 알까시미 (1987~현재)- 2기

 ** 이름이 볼드체로 적혀있는 통치자는 임기 전체, 혹은 일부 기간 동안 두 토후국을 동시에 통치.


북부 지역을 호령하던 알까시미 왕조가 샤르자와 라스 알카이마로 양분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군소 씨족과 마을들은 어느 토후국을 선택해 자신들을 의탁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라스 알카이마는 샤르자와 푸자이라, 그리고 아즈만에 의해 허리가 잘라진 채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샤르자는 오만만에 있는 코르팟칸과 칼바를 자신의 월경지로 확정짓게 되었습니다.



당초 오만에서 샤르자에 붙기로 배를 한 번 갈아탔던 알샤르끼 씨족의 푸자이라는 또다시 태세를 전환하여 셰이크 하마드 빈 압둘라 알샤르끼가 1879년 샤르자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키면서 기나긴 독립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오랜 투쟁 끝에 1901년 영국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게 되며, 토후국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영국은 결국 1852년이 되어서야 푸자이라를 독립된 토후국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5. 알까시미 씨족 분열로 이합집산하는 어수선한 사이 농경지대와 본거지를 확보한 아즈만

UAE의 북부지역이 씨족과 마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사이 UAE 토후국 중 가장 작은 토후국인 아즈만은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와 푸자이라에 둘러쌓인 농경지대인 마나마, 그리고 아즈만을 통치하는 알누아이미 씨족의 본거지인 마스푸트를 월경지로 확정하게 됩니다. 특히 마나마의 경우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과 일본이 본격 수출에 들어간 양식 진주의 확산으로 인해 진주 산업이 타격을 입게 되자, 곡창지대로서의 잠재성을 인지한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후마이드 알누아이미 3세가 적극 투자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6. 오만과 아즈만간의 분쟁 사이에서 얼떨결에 월경지를 얻게 된 두바이

그리고 두바이는 하쉬르 빈 막툼이 통치하던 1870~80년대 이웃 지역인 마스푸트에 정착하고 있던 알누아이미 씨족으로부터의 위협을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오만의 술탄 투르키 빈 사이드로부터 하자라인이라 불리던 작은 산악 마을을 양도받게 됩니다. 그 작은 마을이 아즈만, 라스 알카이마, 오만에 둘러싸인 두바이의 유일한 월경지 핫타입니다.   




7. 결정적인 이유는 그 누구도 쉽게 오가기 힘들었던 산악지역이기 때문!

UAE 북부 지역의 국경이 그야말로 난잡한 이유는 거주가능한 일부 지역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는 해도 UAE 내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하자르 산맥에서 비롯된 산악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유목생활이 중심이 이들에게 있어서 산악지역은 오가는 것은 물론, 그 지역에 살던 원주민이 저항할 경우 쉽게 영역을 확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산악 지역 및 산악 지역에 인접한 농경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중심지인 도심과 달리 다양한 자연환경을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두바이와 아즈만은 자신들의 월경지인 핫타와 마나마/마스푸트에 대한 대대적인 걔발계획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발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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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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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C/GU/UAE2019.08.14 23:49


지난 5월말 두바이몰 GF에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국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중동지역 첫 플래그쉽 매장이 오픈했습니다. 그 드넓은 두바이몰 내에서 젠틀 몬스터 매장을 찾기는 쉽습니다. 두바이몰 중심에 복층으로 자리잡아 두바이 분수쇼를 감상하기 좋은 핫스팟으로도 유명한 애플 스토어 두바이몰을 기준으로 오른쪽 옆에 (디자이너 지미 추 매장) 옆에 매장이니까요. ([두바이] 개방감과 두바이 분수쇼를 만끽할 수 있는 애플 스토어, 애플 두바이 몰 공식 개장, 그리고 방문기! 참조)



그리고 두바이몰의 첫번째 확장 구역인 패션 애비뉴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어 찾는데 어려움이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위치도 위치지만 젠틀 몬스터 매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건 두바이몰 어느 매장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움직이는 조형물 때문입니다. 여러개의 다리가 달린 탑승물이 걷는 것처럼 다리가 움직이는 가운데...



탑승물 주위로는 보름달과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그 주위를 360도로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찾아보니 두바이 플래그쉽 스토어의 매장 컨셉이 13월이 생겨 풀요오뤄진 지구의 미래 농경사회의 풍경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해오고 있는 나라가 UAE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지만 척박한 국토에 녹화작업을 통해 산림의 녹색을 안겨주고 싶어했던 UAE 국부 셰이크 자이드의 의지와 더불어 최근들어 UAE 내에서 자체 먹거리를 조달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는 UAE 업계의 흐름을 감안한다면 의미있는 컨셉이기도 합니다. 음력을 따지는 무슬림들의 정서를 감안하면 모니터 반대편에 설치한 보름달 조형도 꽤나 의미를 두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매장 디자인의 컨셉을 생각해보며 한바퀴 둘러봅니다.













롤렉스, 태그 호이어 등 UAE 내 스위스 명품 시계 및 귀금속, 악세서리 유통으로 유명한 세디끼 홀딩 (Seddiqi holdings)이 라인업 다각화를 위해 유통 전문 자회사로 만든 미젠 (Mizzen)과의 조인트 벤처 설립으로 UAE 시장에 뛰어든 젠틀 몬스터의 경우엔 개성있는 디자인과 컨셉을 살린 아이웨어로 유명 셀러브리티 및 해외 기업의 투자를 받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신흥 브랜드로 두바이 시장에 어필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기에 들어온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몇 년 뒤면 그 자리를 내주겠지만, UAE 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두바이몰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브랜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은 전자제품으로 터줏대감은 당연히 삼성전자의 플래그쉽 매장입니다. 몇 차례 리노베이션을 거쳐 상품 판매 및 A/S, 고객 교육공간까지 마련된 종합공간으로 재탄생한 바 있습니다.



예전에 찍어둔 사진이라 갤노트 10 예판 중인 현재 시점엔 어울리지 않게 갤노트 9 안내가 많이 붙어 있지만, 대략적인 매장분위기를 한 번 보시죠.















삼성전자 매장과 더불어 LG전자 매장도 있었는데, 지금은 철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류의 영향을 받는 화장품 업체. 지금은 없어진 미샤, UAE 내에선 가장 매장이 많은 더 페이스 샵에 이어 지난해엔 에뛰드 하우스가 입점한 바 있습니다. ([기타] 중동지역에 진출한 에뛰드 하우스, 두바이몰점 공식 개점! 참조) 쿠웨이트의 유명한 유통업체 알샤야와 손잡은 에뛰드 하우스는 두바이몰을 시작으로 1년여만에 현재는 아부다비의 와흐다몰과 야스몰에 입점하여 3개의 매장이 운영 중에 있습니다.



단독매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들어 눈에 띄게 매장 내 진열대를 확장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K-POP 코너입니다.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가 발전되면서 버진 메가스토어 매장 내에서 판매공간이 몇 년사이에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는 CD/DVD/블루레이 코너의 추세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역주행 중이랄까요? 매장 내 구석탱이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넌 K-POP 코너는 BTS의 전세계적인 광풍과 더불어 몇 달 사이에 진열대를 하나둘씩 늘려나가기 시작하더니, 이젠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용 진열대가 설치될 정도니 말이죠. ([문화] 슈주에서 BTS까지, UAE를 위시한 걸프지역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K-POP의 인기! 참조) 지난달 슈퍼 주니어의 첫 사우디 및 중동지역 단콘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BTS가 뜬금포로 10월 리야드 킹 파흐드 스타디움에서의 콘서트 일정을 공식 발표한 후 자극받은 UAE 아미들이 #wewantBTSinUAE 라는 해시태그로 BTS의 첫 단콘을 염원하고 있는 가운데, 역시 10월에 들어설 것으로 알려진 두바이 버전의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인 두바이 스타스는 이미 BTS와 EXO를 헌정할 스타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문화] 왜 K-POP을 위시한 한류가 젊은 걸프지역 여성들을 사로잡게 되었을까? 참조)  



그리고, 한국 슈퍼가 아닌 UAE 내 대형 슈퍼체인을 방문해 보면 관련 업계의 노력으로 예전에 비하면 훨씬 다양한 한국 음식을 구입할 수도 있기도 하죠. ([문화] UAE 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한국 음식, 그리고 불가사의한 불닭볶음면의 폭발적인 인기! 참조)  








그런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꾸준하게 거주한 것은 아니지만 1998년 요르단에서의 첫 아랍 생활 이후 20년이 넘게 이 지역을 체험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현지 쇼핑몰에서도 한국 제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다보니, 역효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짝퉁제품을 되도않는 한국어 설명으로 포장해서 한복 입고 홍보하는 한국제품인 것처럼 사기쳐서 파는 것으로 악명높은 무무소가 라스 알카이마 등 두바이 외 다른 지역에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두바이몰 2층에 플래그쉽 스토어 개점 준비 중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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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랍지역 전문 블로거 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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