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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알카이마] 다야 포트, 1819년 영국군 보복침공 당시 최후까지 저항했던 토후국들의 마지막 보루

둘라 2019. 4. 7.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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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알카이마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라스 알카이마를 대표하는 역사 유적지로 꼽는 것이 바로 라스 알카이마 북부 지역인 알람스 지역에 위치한 다야 포트 (Dhayah Fort)입니다. 같은 라스 알카이마 내에 있다지만, 집에서는 마땅히 볼 곳도 없는 그곳 한번 보자고 왕복 100km가 넘는 길을 다녀오긴 귀찮아서 그간 안 들렀다가 그래도 한 번 가봐야겠다며 뜬금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라스 알카이마 시내를 가로질러 갈 수도 있지만,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로드 (E311)를 타고 가다 새로 열린 에미레이츠 로드 (E611)로 이어지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오만 국경을 형해 달리다 보면 큰 교통체증 없이 다야 포트로 갈 수 있습니다. 길은 지루하기만 할 뿐 복잡하지는 않기에 드라이브하기에 좋고, 이 외곽순환도로를 타다 자발 자이스 쪽으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쭈욱 북쪽으로 올라가다 다야 마을 안으로 우회전해 들어가게 되는데 (계속 직진하면 무산담을 갈 수 있는 오만 국경으로...), 마을 안쪽으로 타고가다 보면 좌측에 깔라아 다야 게스트 하우스 건물이 나타나고 철조망으로 막힌 곳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철조망을 쳐놓은 이유는 관광지 개발 및 연구용이라고 하네요. 철조망 너머 뭐가 있는지는 나중에 설명해드립니다.

 

 

한적한 다야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다니다 보면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마을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활보하고 다니는 양, 혹은 염소들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뜬금없이 도로로 난입하기에 길 안막힌다고 맘놓고 운전하다 깜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작은 언덕배기 위해 보이는 것이 오늘의 목적지 다야 포트입니다. UAE 내 유일하게 남아있는 언덕 꼭대기 위에 자리잡은 요새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이기도 합니다. UAE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알려진 푸자이라의 알비드야 모스크 뒷편에도 요새 비스무레한게 있지만, 이보다는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죠. ([푸자이라] UAE에서 가장 오래된 알비드야 모스크 참조) 

 

 

다야 포트는 입구에 안내판만 있고 별도의 직원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무료로 아무 때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영어와 아랍어로 병기되어 있는 다야 포트 안내문.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다야 포트는 봄베이에서 호르무즈 해협 일대를 오가는 동인도 회사의 무역선들에 대한 라스 알카이마 일대 토후국들의 해적질과 노략질에 참다참다 열받아 이 일대의 해적세력을 초토화시키기로 작정한 영국군의 1819년 보복침공 당시 영국군에 저항했던 알까시미 씨족의 최후의 보루이자 격전지였습니다.

 

(1819년 12월 9일 라스 알카이마 함락. 출처는 이미지를 클릭!)

 

1819년 12월 9일 라스 알카이마를 함락시킨 영국군은 그 기세를 이어 세 척의 배를 북쪽으로 보내 람스 일대를 봉쇄한 후 12월 18일 대규모의 대추야자 농장을 가로 질러 내륙에 있는 다야 포트 함락에 나섭니다. 당시 다야 포트에는 총 798명 (남 398명, 여 400명)이 변변한 위생설비, 식수, 그리고 태양빛을 가릴 마땅한 그늘조차 없이 (그나마 겨울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요새 일대에 고립된 채 남아 있었으며, 영국군은 가파른 경사로 인해 지상군이 요새를 공략하지 못하자 박격포와 12파운드 캐논을 동원해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자 영국군은 라스 알카이마 함락에 사용했던 24파운드 캐논을 끌고 올라와 다야 포트 함락전에 투입하기에 이르렀으며, 진흙탕 맹그로브 사이로 힘겹게 끌고 온 24파운드 캐논에서 발사한 단 두 발의 포격으로 요새의 벽이 허물어지자 알까시미 씨족의 마지막 저항군이 12월 22일 아침 10시 30분에 영국군에 항복하면서 다야 포트 함락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요새에 고립되어 있던 798명 중 순수 전투인력은 177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621명은 이 일대에서 가축을 기르던 목동들과 대추야자 농장의 농부 등 비전투인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800명의 인도 토민병과 화포로 무장한 주둔군을 배치한 영국군에 의해 마을과 요새, 그리고 바레인으로 피신시켰던 함선까지 모든 군사력이 풍지박살 난 이 일대의 토후국들은 결국 영국과 1820년 2월 5일 일반해상조약 (General Maritime Treaty of 1820)을 체결하게 되면서 이에 서명한 토후국들은 영국군의 보호하에 군사력 없이 자치권을 부여받는 휴전 국가 (Trucial States) 체제로 전환됩니다. 그 후 영국이 휴전 국가에 주둔시켰던 영국군 철수를 선언하면서 자체적인 군사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던 우산이 사라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토후국 지도자들 중 아부다비 통치자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흐얀과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라쉬드 빈 사이드 알막툼이 1968년 2월 하나의 연합국가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오랜 논의 끝에 1971년 12월 2일 UAE의 건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현재 남아있는 요새 건물은 함락전 이후 다시 지어졌다가 1990년대 들어 복구를 시작해 2001년 4월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의 제약과 용수가 부족해 상대적으로 작게 복구되었다고 하네요. (뭐... 당시의 라스 알카이마 사정을 감안해도...) 함락전 당시에는 가파른 길로 효과적인 공성전을 펼쳤다고 하지만, 현재는 요새까지 계단이 놓여져 있어서 올라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예상 외로 피곤하게 만드네요;;;)

 

 

 

 

 

 

 

 

 

 

올라가다 보면 출입제한 구역으로 막혀 있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돌산 기슭에 대형 대추야자 농장이 있군요.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정상에 도착하게 됩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첫번째 건물이 나타납니다.

 

 

요새 입구에 있던 게스트 하우스도 대추야자 농장 사이에 자리잡고 있었네요.

 

 

워낙 크지 않은 건물의 내부는 단촐합니다.

 

 

 

 

옛날의 위용은 알 수 없지만, 그야말로 아담한 크기로 요새 정상에는 두 개의 건물만 있습니다.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360도 뷰는 멋진 경관을 자랑합니다. 뒤에는 산이 가로 막혀있고, 

 

 

앞쪽으로는 대추야자 농장을 내려다볼 수 있으니까요.

 

 

 

 

 

 

지평선 끝에는 바다가 펼쳐집니다. 돌산 기슭에 대형 대추야자 농장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건천 와디와 바다, 그리고 맹그로브가 어우러져서 농경이 가능한 일정량의 물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이 일대에 사람들이 살아왔으며, 오만과 함께 와디 수끄 시대를 영유했다고도 하네요. 

 

 

저쪽으로 계속 가면 오만 국경에 닿게 됩니다.

 

 

 

 

 

둘러봤으니 이제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합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한낮에 올라갔다 내려왔더니 그 피로도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군요. 날씨 좋은 날 해질 무렵에 올라오면 멋진 주위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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